"이러다간 9월 이후 한국에…" 무서운 경고
[창간기획 특별 인터뷰]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9월 이후 국내 경제 급격하게 나빠질 수도… 경제민주화 논할 여유 없다스페인 은행 실사 결과 따라 세계 금융시장 또 요동 우려재벌개혁 정부 힘으론 한계… 시장과 역할분담 방법 찾고수출위기 따른 시장 변동성… 내수 활성화로 줄여나가야
대담=서정명 경제부 차장 vicsjm@sed.co.kr
정리=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s020792@sed.co.kr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내년에 그런 개혁을 할 여유도 없을 겁니다."
한국 경제계의 어른이자 화폐 금융 분야 권위자인 박영철(73ㆍ사진) 고려대 석좌교수가 서울경제신문 창간 5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9월 위기설'을 화두로 던지며 이같이 정치권을 질타했다.
그는 "오는 9월 스페인의 은행 실사 결과가 나오면 세계 금융시장은 다시 요동을 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대한민국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생생한 현장에 있었던 박 교수는 유럽 위기에 대해서도 여느 전문가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한 진단을 내놓았다.
지난달 초 유럽 위기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돌아온 그는 '리더십 부재'라는 새로운 위기가 유럽을 내몰고 있다고 전했다. 재정위기가 국가ㆍ지도자 간 신뢰 위기로 번지면서 위기의 해법은 없어졌고 결국 향후 2~3년 내에 유로존이 붕괴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 하반기부터 우리 경제의 성장률 하락도 본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거의 계절을 맞아 국내 정치권이 온통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에 매몰돼 있지만 박 교수는 이를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지금은 성장률의 추가 하락을 막고 경제의 현상 유지를 하기도 바쁠 때라는 것이다. 차기 정부에는 "내수시장을 활성화해 수출 시장 위기에 따른 시장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페인 은행 총 대출 15% 부실 우려=박 교수는 현재 유럽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리더십의 부재라고 보고 있다. 그는 "독일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 통계나 금융 통계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유로존 국가들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다가 해결 방안이 안 나오면서 서로 불신을 하는 내분사태로 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제논리로 해결이 안 되면 정치적 리더십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데 유럽 지도자들 간 불신이 팽배해 사태 수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9월 스페인 은행의 부실 규모가 정확히 드러날 경우 유럽 위기가 다시 중대 고비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현재 회계사들이 스페인의 은행 부실 자산규모를 조사하고 있는데 유럽 시장에서 예측되고 있는 규모는 2,500억유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정도면 총 대출의 15%가 부실자산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인데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세계 금융시장은 다시 요동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유로존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이미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독일하고 나머지 나라들의 불신의 골이 깊어지면서 결국 외부 세력이 개입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미국도 그런 능력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유로존이 2014~2015년께 해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독일 내에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2~3년 후면 독일에서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독일이 탈퇴를 하든지, 유로존이 붕괴되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유로존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 급속히 나빠질 가능성=그렇다면 우리 경제 상황은 어떻게 될까. 박 교수의 예측처럼 유럽 위기가 더욱더 악화된다면 우리 경제도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정부 내에서는 하반기 경기에 대한 '낙관론'이 우세한 상태며 국민들 역시 크게 위기감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가 양호한 거시경제 지표에 너무 취해 현실 감각이 다소 결여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경제를 거시경제로만 본다면 성장률이 3%대 이상 되고 공식 실업률 통계도 3%대이므로 경제가 비교적 안정된 것처럼 보이겠죠. 경상수지도 흑자고 지니계수도 좋아지기는 했습니다. 통계로만 본다면 한국처럼 경제가 잘 돌아가는 나라도 없습니다."
박 교수는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양호한 경제지표들 때문에 우리 사회의 논쟁이 재벌 개혁이나 경제민주화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만 집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거시경제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 이러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너무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 세계 경제가 지금보다 더 급격히 나빠지면 우리 경제도 성장률 하락이 본격화되고 실업률은 높아지며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내년 이맘때가 되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개혁을 할 여유도 안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 여건에 취약한 우리 경제가 지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급속도로 나빠질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그는 "내년 초부터 복지제도를 대폭 개편한다느니, 재벌을 개혁하겠다느니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지면 무슨 개혁을 하겠냐"고도 말했다.
◇정부 힘으로 재벌 개혁하는 것은 해법 못 돼=박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란이 뜨거운 '경제민주화'도 결코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경제 원로인 박 교수가 보기에 경제민주화는 지난 1950년대부터 무려 60년이 넘게 계속돼온 논쟁이다. 그는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늘 나오던 이야기였고 늘 대안은 정부가 더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귀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재벌 개혁을 위한 정부 역할 또한 한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면 정부의 실패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며 "정치는 모든 사람들이 한 표를 가지고 있지만 소유와 생산과 분배를 투표로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각 나라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며 정부가 강력한 힘으로 재벌을 개혁하는 것이 결코 경제민주화의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무상보육 등 복지 확대 문제에 대해서도 재원 마련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는 성급히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 해도 그 이자는 결국 국민들이 부담하게 되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무작정 찬성하기보다는 재원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부자 증세 문제에 대해서도 경제 사정을 봐가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내년에 미국 경제가 급격히 회복되면 우리나라도 복지에 신경을 쓸 여유가 생길 수 있고 증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유럽 위기 사태만 더욱 심각해진다면 감세로 가든지 안 한다 하더라고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 내수시장 강화해 시장 변동성 막아야=박 교수는 차기 대통령이 가장 주력해야 할 부분 중 하나로는 내수시장 강화를 꼽았다. 우리나라가 시장개방을 통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수출에 너무 의존한 정책으로 경제의 취약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경제의 사이클이라는 것이 세계 경제의 흐름에 따라 급격히 변하고는 하는데 우리처럼 과도히 개방된 경제에서는 세계 경기의 위험요소들을 최소화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수시장의 파이를 키워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서비스 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해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내수로 경제가 최대한 지탱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내수육성 정책이 소득 분배 문제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처럼 우리가 수출에만 의존을 하게 되면 수출이 잘되는 첨단 산업 같은 것들만 더 많은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며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수출주도형 경제는 어느 단계를 지나가면 소득 분배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차기 정부에 5년 내 실현이 가능한 개혁안을 들고나올 것을 주문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라서 3년이 지나면 레임덕이 찾아오는데 대부분의 대선 주자들이 10년 개혁안을 들고 나온다"며 "차기 정부는 5년 이내 할 수 있는 것들을 추려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의 큰 공약은 단 하나만 실패해도 나머지가 성사되기 어렵다"며 "대선 주자들이 이를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약력
▦1939년 대전 ▦서울고, 서울대 경제학과 ▦1968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경제학박사 ▦1976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1984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8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1987년 청와대 경제수석 ▦1992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1997년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1999년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 ▦2001년 외교통상부 대외경제통상대사 ▦2004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5년 서울대 국제통상ㆍ금융센터 소장 ▦현 고려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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