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007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명 후 줄곧 '이익의 균형'이 잘 맞춰졌다고 강조해왔다. 이것이 2010년 재협상 후 부메랑이 됐다. 야당은 재협상으로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 것을 폐기와 재재협상의 핵심 논거로 삼고 있다. 실제 재협상 결과는 마이너스다. 우리 측 자동차 분야의 이익은 줄고 농산물과 의약품 등의 피해는 줄였지만 감소한 이익이 추가로 보호한 이익보다 커 더하기ㆍ빼기를 하면 마이너스다. 그러나 이익이 줄어든 자동차업계는 "FTA를 안 하는 것보다 낫다" 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재협상을 통해 어찌 보면 농축산업 보호를 강화한 것이어서 재협상 때문에 FTA를 폐기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야당이 FTA 폐기를 강행한다면 가능할까. 총선 승리로 국회 다수석을 점한다고 FTA를 폐기할 수는 없지만 야권 후보가 오는 12월 대선에서 승리해 폐기하기로 하면 가능하다. 협정문은 FTA 폐기를 인정하고 있고 어느 한 국가의 선언만으로도 효력이 발휘된다. 하지만 엄청난 후폭풍은 감수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발효된 FTA가 일방적으로 폐기된 유례가 없어 한미관계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가신인도 역시 떨어질 가능성이 커 FTA 폐기론은 대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경솔한 오버'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야당은 FTA 폐기를 촉구하고 재재협상을 요구하며 달라진 국제 경제상황을 꼽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를 거론하는 것.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의 빗장은 1990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대부분 풀렸다. 또 한미 FTA에서 금융시장 추가 개방은 엄격히 제한돼 있고 금융 세이프가드가 도입돼 위기시 외화 유출입을 정부가 통제할 수도 있다. 국책 금융기관의 특수성도 개방 예외로 인정돼 있다. 정치권은 오히려 지난해 헤지펀드 도입을 용인한 바 있다. 무엇보다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로 보호무역주의가 각국에서 거세지는 상황에서 FTA 허브 구축은 한국의 독특한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지난해 비준 과정에서 최대 논란이었다. 정부의 독립적 정책 추진이 외국인투자가 때문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새누리당이 최근 발표한 대형마트 및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중소도시 진출 제한은 ISD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법안은 국내에서도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단적으로 대형마트의 휴일을 강제 지정하면 입점 중소상인들은 피해를 면치 못한다. 이들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듯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도 외국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대항할 수 있는 장치가 ISD다. 미국 기업의 국내 투자보다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액이 더 큰 상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이준규 박사는 "한미 FTA는 유럽과 중국ㆍ호주 등을 통상 분야에서 우리 주도로 움직일 수 있게 할 만큼 전략적 가치가 크다"며 "경제적 효과는 활용도를 어떻게 높이고 피해에 얼마나 적절히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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