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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러시아의 가스공급 계약이 동아시아 에너지 시장 판도를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국·일본 등에 판로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25일 중국 경제참고보 등은 지난 21일 체결된 중국과 러시아 간 4,000억달러의 천연가스 공급계약이 아시아권의 에너지 가격 구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러 가스 공급계약이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 큰 이득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 역시 30년 동안 공급하기로 한 계약으로 중국이 막대한 천연가스 개발 인프라 비용을 러시아에 지원하게 됐다며 러시아가 그동안 미뤘던 시베리아 지역의 천연가스 개발과 운송체계를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도 공급여력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WSJ는 코빅타·차얀드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의 대부분이 계약에 따라 중국으로 가겠지만 나머지는 가스관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운반된 후 액화천연가스(LNG)로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공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운송비용이 줄어들며 가격이 낮아진 천연가스 공급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 부담을 덜게 되고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에너지 수출 의존도를 줄여 추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WSJ는 지적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전력발전의 30%를 LNG 연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LNG를 전량 선박으로 수입하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천연가스를 사용하고 있다. 멕시코만 산지 기준으로 가스 1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량)의 평균 가격이 4달러지만 일본에는 이보다 4.5배 비싼 가격으로 도입된다. 중국의 재정지원에 따른 가스전 개발로 블라디보스토크가 사할린 가스전과 함께 동시베리아 가스전의 가스를 모아 액화시켜 한국과 일본 등에 공급한다면 동아시아 천연가스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당장 가스관이 완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4~6년 뒤에는 중국에 가스 공급이 시작되는 만큼 단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러시아의 가스전 개발 인프라 비용을 책임지게 된 만큼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한·중·러 가스관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중·러 가스 공급계약이 코빅타·차얀드 가스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스코보로디노와 블라고베센스크 등을 거쳐 중국 하얼빈, 선양, 베이징, 산둥성 칭다오로 이어지는 가스관으로 공급하는 만큼 이 구간을 연장해 우리나라로도 끌어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근욱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3월 보고서에서 "대형 선박으로 LNG를 실어오는 것과 파이프라인 공급선을 확보한 상황은 가격협상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러 가스관을 중국 내 최종점인 산둥에서 인천까지의 거리가 315㎞ 정도에 불과하고 수심도 평균 55m 정도로 낮아 충분히 경제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남·북·러 가스관 사업 즉, 블라디보스토크-북한-속초 구간이 850㎞에 달하고 북한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있었다면 서해 가스관 프로젝트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중·러 가스관이 연결될 경우 한국은 러시아의 가스를 일본에 공급하는 중간 공급기지가 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이번 중·러 가스 공급계약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천연가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들에는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아시아 에너지 수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는 가스 개발 프로젝트들이 중국이라는 수요처의 변화에 따른 손익을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중국에 싼 가격에 가스를 공급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나오지 않는 프로젝트는 중단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장기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다시 맞춰지며 장기적으로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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