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치의같은 법무법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전문성을 강화하고 고객에게 한 발 다가가 고객이 찾는 로펌이 돼야 한다는 뜻이죠."
우리나라 로펌(법무법인)들은 최근 내우외환(內憂外患)과 맞닥뜨렸다. 밖에서는 유럽ㆍ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넓어진 문으로 들어오는 외국계 로펌들과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안에서는 쏟아져 나오는 로스쿨 졸업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둘 다 해결이 만만치 않은 숙제다.
그러나 이정훈(65ㆍ연수원 1기)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 변호사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송무 중심이던 작은 법률 사무소를 기업 인수합병과 국제중재, 금융ㆍ증권 등에 강한 국내 유수의 로펌으로 키워낸 이력이 이 대표 변호사의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인터뷰 동안 그가 반복한 단어는 "하면 된다, 경쟁을 두려워하지 마라"였다.
이 대표 변호사는 법률시장 개방의 시대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만이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려면 결국은 인재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한국 로펌에 한국 변호사가 고용되는 형태였는데, 이제는 외국 로펌이 한국 변호사를 영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는 "외국 로펌들은 아무래도 한국 신입 변호사보다는 기존 변호사를 선호할 것"이라며 "인재를 빼가려는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속력이 약하고 기반이 취약한 로펌에서는 인재 출혈이 심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대책이 있느냐고 묻자 이 대표 변호사는 "로펌이 변호사에게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답했다. 그는 "소속 변호사에 대한 투자는 전문성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로펌 자체의 전문성을 높이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평양은 이미 개방에 대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해 육성하고 경영시스템도 개편했다"며 "국내 로펌 중 변호사 이직률이 가장 낮은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태평양은 법률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평양은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을 지원하는 '아웃바운드 M&A'팀을 국내 처음으로 출범시킨 바 있다. 지난 2004년과 2008년에는 각각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국내 로펌 최초로 사무소를 세웠다.
태평양은 법무법인(유한)으로의 조직 전환 역시 2007년에 이미 끝냈다. 이 대표 변호사는 " 모범적인 로펌을 만들자는 것이 (태평양의) 창립이념"이라며 "숨기는 것 없이 투명경영을 했더니 오히려 고속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태평양의 행보를 진취적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평양은 19992년 한ㆍ중 국교정상화가 된 뒤 김종길 변호사를 선발대로 파견해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 개척에 나선 경험이 있다. 이 대표 변호사는 "중국어 어학 연수 해야지, 사무소 개소 허가 기다려야지 좀 어려웠겠느냐"며 "그래도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스쿨 제도에 대한 이 대표 변호사의 시각은 열려있다. 이 대표 변호사는 "운영의 문제지 (로스쿨)자체를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로스쿨 제도를 법조계가 다양해지고 특권의식을 버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표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좋은 인력을 사회 각지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운영을 잘못해서 일본의 전철을 밟으면 곤란할 것"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 로스쿨 생들의 변호사 합격률은 25%대로 떨어졌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일부는 월회비도 내지 못해 변호사 등록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 변호사는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 경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법률시장의 진입장벽을 높이지 말고 로스쿨 졸업생을 포함시켜 경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현재 로펌들이 로스쿨 졸업생을 뽑는 기준이나 방식이 들쭉날쭉하다" 며 "아직 과도기인만큼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펌 순위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던지자 이 대표 변호사는 솔직한 답변으로 응했다. 그는 "김앤장 외에 2~3위 권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현재 로펌 시장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 변호사는 1,600억원 이상으로 알려진 지난해 태평양의 매출 실적과 관련해서는 "전년 대비 10%이상의 성장률을 이뤘다"며 "앞으로는 존재 가치를 더욱 극대화 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600억원 이상의 매출은 외형 규모로만 보면 김앤장에 이어 2위 위치다. 이 대표 변호사는 균형 있는 수익을 위해 송무와 자문의 비율은 40대 60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대표 변호사는 외국 로펌과의 M&A를 통한 '막연한 덩치 불리기'는 지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외국 굴지의 로펌과의 업무협조관계는 고려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
▦1947년 서울 출생 ▦1968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 합격 ▦1972년 제1기 사법연수원 수료 ▦1972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석사 ▦1972~7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75~77년 서울지방검찰청 수원지청 검사 ▦1983년 미국 노트르담대 법학전문대학원(University of Notre Dame Law School) 졸업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ㆍ뉴욕주 변호사 자격 취득 ▦1990년 GATT 우루과이라운드 전문직업서비스 협상 대표 ▦1999~2001년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한국지적재산권학회 회장 ▦2007년 대한중재인협회 회장 ▦1998년~현재 법무법인(유) 태평양 대표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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