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직업소개소에서 일하는 직업상담사 이모(30)씨는 요즘 출근하기가 두렵다. 상담을 도왔으나 취업에 실패한 구직자들이 찾아와 고성을 지르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행패를 부리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머리채까지 휘어 잡히는 일을 겪으면서 언제까지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직업소개소에 근무하면서 상담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직업상담사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이 도마에 오르면서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직업상담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29일 서울시 각 구청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서울시내에는 총 2,092개(올해 2월 기준)의 직업소개소가 등록돼 있다. 이들은 직업안정법에 따라 고용부 관할 아래 각 지방자치단체의 구청에서 관리·감독을 받는다. 고용부가 직업상담사의 교육을 주로 담당하며 지도 검열 및 단속 등의 업무는 모두 구청이 담당한다. 문제는 직업상담사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기껏해야 2~3명의 인력이 근무를 하는 영세한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는 것. 이 때문에 취업에 실패한 노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리낌 없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직업상담사 이모씨는 "직업을 알선해주는 상담사가 도리어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갖는다는 건 아이러니"라며 "구청에 몇 번이나 민원을 넣어봤지만 담당자들은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다"고 하소연했다. 종로구 D직업소개소의 김모(53) 소장은 "구직자들이 찾아와 욕을 내뱉고 난리를 피워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지구대 신고가 고작"이라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찰이 들락날락하다 보면 그날 업무는 종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답답해 했다. 김 소장은 "당국이 서류 검사나 정기 단속 등의 형식적인 감독만 하지 말고 좀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소개소 관리를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속히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옮겨야 할 고용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작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그런 일이 흔히 있을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중앙 부처가 아닌 각 자치구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라고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구청 관계자는 "구직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사소한 불만 등을 거칠게 표출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구 차원에서 특별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는 등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직업소개소의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이 현재 3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이 난립하게 된 한 원인"이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영세 사업장 난립을 해소하는 것이 직업상담사의 안전을 도모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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