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신용카드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크고 작은 제도들이 변화를 맞았다. 중소가맹점들이 불만을 토로했던 업종별 가맹점수수료 체계가 40년여 만에 개편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매출 2억원 이하의 중소가맹점에 대해서는 1.5%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하며 여타 개별 가맹점은 카드결제서비스 제공비용을 고려해 수수료율을 책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부분 중소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은 인하되는 반면 대형가맹점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가맹점과 고통 분담 취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가맹점들과 조금이라도 고통을 분담하자는 것이 개편안의 취지다.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12월22일부터 새 가맹점수수료체계가 시장에서 적용됐어야 하지만 아직도 가맹점수수료율을 둘러싼 진통이 지속되고 있다. 일부 손해가 불가피한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새 수수료체계가 제대로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기존에 중소가맹점보다 저렴한 수수료가 적용됐던 대형가맹점들이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1.5% 이하의 수수료율을 부담하던 대형가맹점들은 여타 가맹점과 유사한 1.9∼2.0%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대형가맹점들은 매출규모가 크기 때문에 카드사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부 대형가맹점들은 가맹점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한다.
파장은 소비자에게도 미치고 있다. 연초부터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무이자할부 서비스 중단 사태다. 카드사들이 여전법 개정안에 따라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중단하자 큰 혼란에 빠지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카드사들은 주로 대형할인매장을 이용하는 카드회원들을 위해 3개월 이내의 무이자할부 혜택을 제공해왔다. 그에 따른 마케팅비용은 전적으로 카드사가 부담해왔다. 그런데 카드사들이 특정 가맹점에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마케팅비용의 50% 이상 부담할 수 없도록 개정안에서 명시하고 있다. 대형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카드사들에 부당하게 비용부담을 떠넘기던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 그런데 대형가맹점들이 마케팅비 공동부담을 거부하면서 무이자할부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초래됐다. 카드사들과 대형가맹점들은 무이자할부 서비스 지속을 위한 비용분담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이 얽히면서 여전법 개정안의 당초 의도가 빛이 바래고 있다. 곳곳에서 수수료율체계 조정을 놓고 피로감마저 호소하고 있다. 카드사ㆍ가맹점은 물론 카드 회원들이 대승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설 땅을 잃어버릴 수 있다.
현재 대형가맹점들은 수수료율 인상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전문가들 사이에는 지금까지 대형가맹점에 현저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견해가 많다. 대형가맹점은 건당 결제금액이 여타 가맹점과 비슷함에도 매출규모에 따른 협상력 우위를 내세워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 받아왔다. 무이자할부 역시 카드 회원사들은 서비스 지속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무이자 할부 점진적 폐지 바람직
무이자할부는 저소득층 카드회원의 이자부담 경감과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형할인매장의 매출확대를 수반했던 장점이 있다. 반면 과소비와 습관적 무이자할부 이용,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여력 저하, 카드 비이용 고객에 대한 역차별 등의 역기능도 있다.
이 때문에 시장 전체의 건전성과 형평성을 고려할 때 무이자할부 지속보다는 점차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일시에 중단하면 회원들의 자금사정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중단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새 가맹점체계를 비롯해 개정안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초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일종의 '학습료'인 셈이다. 그럼에도 각종 갈등은 결국 이해당사자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신용카드는 이용자에게 여러 혜택을 주지만 거래비용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카드사들의 마케팅비용 등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비용은 가맹점 수수료율 인상을 초래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맹점의 물품가격에 반영됨으로써 카드를 이용하지 못하는 저소득자ㆍ노년층 등 취약계층의 부담을 확대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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