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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한국 의료인들의 고민

박상영 사회부 차장

요즘 대학병원 관계자나 의료인들을 만나면 꺼내게 되는 화두는 단연 얼마 전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한 반론이다. 환자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퇴원을 허용하면 ‘살인방조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현실을 무시한 논리에 불과하고 의료현장에서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료인들이 이번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죄확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회생 가능성이 있었다’는 의사의 초기 진술이다. 이에 대해 의료인들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등 의료현장에서 회생 가능성의 판단은 사법부의 잣대처럼 100%나 0%로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고 일축한다. 조금이라도 생명이 붙어 있는 한 회생가능성 0%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기준으로 볼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오지 못하고 집에서 임종하는 환자의 보호자는 모두 살인죄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내의 경우 매년 10만명 이상의 환자들이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뿐만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치유가 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질병을 앓고 있는데도 돈이 없어 치료시기를 늦추거나 생명을 포기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당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의 치료비는 의료기관에서 모두 부담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병원과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한다면 앞으로도 많은 의사들이 병원보다는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항변하는 의료인들의 입장을 겸허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 판결 이후 의료 관련 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한 것 같다. 이들 단체가 제시하거나 찾는 해법은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재발방지를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데는 나름대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실려온 환자 중에서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지만 치료비가 없어 수술을 거부하는 보호자들의 의견을 뿌리치지 못할 경우 또 다른 법규위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팽배한 듯하다. 정부는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기에도 벅찬 가정의 신생아와 미숙아ㆍ만성질환자에 대한 지원책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사법적 심판을 받은 의료인들의 사면복권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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