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맞은 대한민국은 중국의 움직임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반도와 맞닿아 있다는 지리적 입지는 차치하더라도 북한을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어 통일한국의 기반을 닦기 위해 대중 외교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국 대비하는 외교력 필요=새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첫 순방국가가 중국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외교가에서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당시 북한이 '정전협정 파기' '1호 전투근무태세 발동'과 같은 도발로 한반도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외교부 내에서 북미 라인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았으나 이제는 중국 라인에 대한 선호도도 이에 못지않다"며 "중국이 '관시(關係)'를 중요시하는 문화임을 감안하면 중국 담당 외교관들이 다년간의 경험을 쌓으면 향후 외교영역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 외교보다는 대미 외교에 주력하는 방침에 대해 적절한 외교력 배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외교 라인의 수장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김규현 1차관은 미국 근무 경험이 있어도 중국에서 근무한 경험은 없다. 청와대 라인 또한 김형진 외교안보수석실 외교비서관과 김홍균 국가안보실 국제협력비서관 등 미국 전문가들이 주를 이룬다. 외교부가 한자 문화권이라는 유교적 동질성에 기반해 '인문 유대' 강화로 대중 전략창구를 늘린다는 복안을 밝힌 바 있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경쟁하는 대국(大國)=대국을 자처하며 세력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의 향방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백두산 개발 등을 통해 북한 영토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경우 북한이 중국의 24번째 성(省)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해 한반도 분단 상황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중 간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에서 중국은 더 이상 미국적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며 "우리도 중국의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 대북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민족주의 또한 대중 관계 강화를 노리는 우리 측이 주의할 부분이다. 지난 2008년 중국 베이징올림픽의 성화 봉송이 서울에서 진행됐을 당시 중국인 6,500명은 티베트 인권 문제를 비판한 한국인 200여명을 폭행했지만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한 사과 없이 유감만 표시하는 중국식 민족주의의 거친 면모를 잘 드러냈다
따라서 중국의 폐쇄적인 외교 행태를 감안해 다양한 중국통(通)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으로 스스로의 잠재력을 갉아먹던 어두운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팍스시니카(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라는 말이 일반명사처럼 쓰인다"며 "중국 정부의 특수성을 감안해 중장기적 대중 외교정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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