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벼랑끝으로 몰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 부실은행 수혈안마저 삐걱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전날 이른바 트리플A(독일ㆍ네덜란드ㆍ핀란드) 재무장관은 스페인 부실 은행권에 지급하기로 한 1,000억유로의 구제금융에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트리플A는 25일 헬싱키에서 회동을 갖고 "유럽안정화기금(ESM)이 각국 부실 은행권이 지고 있는 '과거의 빚(Legacy Asset)'을 지원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일제히 "지난 6월 말 유럽연합(EU) 정상들이 스페인 부실 은행권에 1,000억유로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7월 말 300억여유로를 1차적으로 지원했지만 나머지 600억여유로는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은행권 부실의 급한 불은 껐다며 안심하던 스페인 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26일 스페인 일간 엑스팬션은 "트리플A가 EU 협정을 폭파시켜버렸다"고 보도했다. 유럽위원회도 180도로 바뀐 트리플A의 입장에 충격을 받은 기색이 역력하다고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이날 유럽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EU의 6월 협정은 확고한 것이라며 애써 사태 확산을 축소시켰다.
현재로서는 EU의 모든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을 고작 3개국이 반박하고 나선 것이라 트리플A의 지원 중단 성명이 실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텔레그래프는 이들 국가가 돈줄을 쥐고 있는 실세이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트리플A의 주장이 실행된다면 가뜩이나 중앙ㆍ지방정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스페인 정부는 은행권 부실까지 떠안아야 하는 '폭탄'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28일 발표되는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부실은행권에 필요한 자금이 당초 예상치인 1,000억유로를 넘어 비관론자의 주장처럼 1,500억유로에 달할 경우 스페인 정부의 부담은 제로(0)에서 단숨에 1,100억유로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가 확산되자 26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금융시장은 폭락했다. 트리플A의 공동성명에 ▦스페인 최대 자치주 카탈루냐의 독립 시사 ▦안달루시아의 50억유로 구제금융 검토 ▦대규모 반긴축 시위 등이 잇달아 터지며 스페인이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인식 탓이다.
이날 스페인 10년물 국채금리는 6.03%로 지난 6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무제한 국채매입 발언이 나온 후 처음으로 '위험 수준'인 6%를 넘어섰다. 스페인 증시인 IBEX35지수도 3.92%나 폭락해 7,854.40을 기록, 드라기 총재 발언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프랑스ㆍ독일ㆍ영국 증시도 2% 내외로 크게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드라기 효과'의 약발이 다하고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당장 시장은 27일 발표될 스페인의 내년도 예산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시장의 바람대로 대규모 추가 긴축안을 내놓을 경우 금융시장은 안정세로 돌아서겠지만 국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이 최대 걸림돌이다.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25일부터 이틀 연속 의회 앞에서 경찰과 유혈 충돌을 빚고 있다. 다만 미국을 방문 중인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스페인 사회 모두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26일 재차 강조해 스페인 정부가 긴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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