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기초 선거 공천을 일단락지은 새정치민주연합의 9일 여론조사. 다음날 발표된 국민 여론조사(새누리당 지지자 배제한 2,000명 샘플)와 당원 여론조사에서 공천과 무공천이 각각 53.4%, 46.5%로 나오며 새정치연합도 공천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도출됐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한 전문가는 조사 당일 아침 핵심 당원들에게 공천과 무공천에 관한 시뮬레이션 예측 결과를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결국 승패를 가른 당원 여론조사의 경우 응답률이 20%대 중반이면 열성 당원 위주로 응답하게 돼 공천이 예상되지만 30%대로 넘어가면 무공천으로 나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결국 당원조사의 ARS(자동응답시스템) 응답률을 높이는 게 관건이어서 집 전화든 휴대폰이든 36만명의 당원에게 5번까지 전화를 걸면 32% 정도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당은 3~5회 ARS 전화를 걸기로 했고 하루라는 시간 제약으로 4번에 그치며 응답자는 총 36만 여명의 당원 중 8만여 명(25%)에 그쳤다. 이에 따라 공천을 희망하는 국회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의 입김아래 있는 핵심당원들과 친노 열성 지지자 위주로 대거 투표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친노계 측은 공천을 촉구하는 문자메시지도 대거 날렸다. 국민과 당원 여론조사에 동일하게 적용된 설문 문항도 마치 공천을 유도하는듯하게 쓰여져 많은 논란이 일었다. 당시 4명의 문항 위원 중 친노인 김 현 의원이 적극적으로 공천을 유도하는 문항을 주장하고 공천을 지지하던 손학규계의 김민기 의원이 동의하면서 문항이 치우쳤다는 후문이다. 김한길계이자 손학규계인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과 안철수계인 이태규씨도 참여했으나 대세는 기울었다. 문항 내용을 보고받은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도 어쩐 일인지 그대로 추인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도부는 무공천으로 나올 것을 확신했으나 ARS 전화 횟수나 문항 내용을 놓고 볼 때 공천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약속과 신뢰의 브랜드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험이 많은 김 대표가 나름대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공천 쪽으로 틀어진 설문조사 분위기를 바로 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대권구도까지 김한길·안철수 연대가 이어질지 주목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가 후보 선정 과정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인지도에서 앞선 후보에게 유리하고 문항이나 응답률, 시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마다 다른 원칙과 기준이 적용돼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실례로 새정치연합 경기지사 선거의 경우 국민 여론조사와 공론조사(배심원단이 후보 토론을 지켜본 뒤 투표)를 절반씩 합산하는데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경기도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자는 김진표 예비후보 대새누리 지지자는 빼자는 김상곤·원혜영 예비후보가 격돌하며 김 의원 측의 보이콧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결국 원 의원이 여론조사도 전체와 새누리 지지자 배제를 반반씩 하자는 안을 제시했고 김 의원이 ‘독배를 마시겠다’고 받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로 확정된 원희룡 전 의원도 조직이 강점인 우근민 제주지사에 맞서 100% 여론조사 방안을 관철해 내 압도적 표차로 후보가 될 수 있었지만, 경선에 불참한 우 지사의 선택에 따라 경선판이 요동칠 전망이다.
기초 선거에서도 여론조사를 조작하려는 정치 브로커까지 활개를 치는 등 혼탁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수도권에서 군수로 출마한 K씨는 “‘1억원만 주면 전화회선을 대량 임시로 개통해 특정번호로 착신되도록 한다는지 해서 경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브로커들이 접근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노 후보가 4.6%포인트 차로 승리),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명박 후보가 당원투표에서는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앞서 승리),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여론조사 단일화 추진 등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만능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여론조사는 많은 결정기준의 한 요소로 참고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정치권이 최종 의사결정을 여론조사에 의존하기보다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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