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냈다. 보이스피싱ㆍ불법사금융 등의 금융피해를 입은 서민과 취약계층에게 긴급자금을 빌려주는 '새희망힐링펀드'의 대출심사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제도도입 6개월 만에 재산 요건을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조치에 금감원이 새희망힐링펀드의 대출실적이 부진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을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권혁세 금감원장이 애착을 갖고 추진하는 사안인데다 당국이 금융사의 팔을 비틀어 재원을 마련했지만 대출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7개 유관기관과 135개 금융회사의 법인카드 포인트를 기부 받아 24억원의 새희망힐링펀드 재원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금융피해자 중 신용도가 낮아 자체적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최대 500만원까지 연 3%의 저리로 생계비를 대출하는 구조다. 다만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 재산 요건을 대도시는 1억3,500만원 이하, 기타 지역은 8,500만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펀드의 대출실적이 부진한데다 그마저도 특정 피해자에게만 대출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올 1월까지 적립된 기금 24억원 중 대출이 나간 금액은 6억2,700만원으로 26%에 그쳤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 펀드 불완전판매 피해자, 보험사고 사망자 유자녀 등 지원 대상자는 여섯 유형이나 됐지만 보이스피싱과 불법사금융에만 대출이 집중됐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나 펀드 불완전판매자 등은 대체로 재산 요건을 초과해 자금을 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초의 재산 기준이 너무 낮았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도시 기준인 1억3,500만원은 보건복지부의 긴급생활지원 대상자의 재산 요건을 참고한 것"이라면서 "1억3,500만원이면 대도시의 전셋집 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결국 현재 1억3,500만원 이하로 돼 있는 재산 기준이 엄격해 다양한 유형의 피해자들의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며 이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뚜렷한 근거 없이 제도를 도입한 지 6개월도 안 돼 재산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새희망힐링펀드의 재산 기준이 긴급생활지원 대상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를 고칠 경우 형평성에서도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산 요건을 완화하면 좀 더 많은 금융피해자가 이용할 수 있다"고 항변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재산 요건 완화에 대한 발표는 신중했어야 했다.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겠다던 새희망힐링펀드의 당초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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