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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Life] 홀로서기 나선 발레리나 김주원

"울타리 안 정해진 몸짓 벗어나 나만의 색깔 찾을래요"<br>전설의 발레 '마그리트와 아르망'… 4월에 동양인으론 첫 공연<br>음악·발레·사진 등 장르 융합… 새로운 무대도 5월에 선봬<br>도전하는 삶, 두려움보단 설레요

사진제공=떼아뜨로

사진제공=떼아뜨로

발레리나를 종종 불나방에 비유하곤 한다. 불이 있으면 몸이 타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몸을 내던지는 불나방처럼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아름다움, 완벽한 몸짓을 향해 쉼 없이 날갯짓을 한다. 발레리나 김주원(35·사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쉬지 않고 달렸다"는 그의 말처럼 김주원은 20대 청춘을 고스란히 국립발레단과 함께 불태웠다. '지젤'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호두까기인형' 등 유수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우아한 선과 섬세한 연기를 펼치며 객석에 황홀경을 선사했다. 늘 후회 없는 무대에 대한 갈망은 그를 프리마 발레리나로 우뚝 서게 했다. 이제 서른 하고도 다섯을 더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김주원은 또 다른 시작점에 서 있다. 지난해 6월 15년간 수석 무용수로 몸 담았던 국립발레단을 떠나 홀로서기에 나섰다. 다음달 5∼7일 동양인 최초로 전설의 발레 '마그리트와 아르망'을 무대에 올린다. 기획부터 아름다운 몸짓까지 모두 그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으로 연습에 한창인 김주원을 14일 오전 서울 미아동 서울사이버대학에서 마주했다.

◇국립발레단 15년을 되짚다

발레 무용수의 생명이 20∼30대로 제한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줄리 켄트 등 해외 발레단에도 40대 주역들이 적지 않다. 김주원 역시 여전히 국립발레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아하고 노련한 몸짓을 선사할 수 있는 때다. 그러나 그는 울타리 밖을 선택했다."(국립)발레단 생활을 하면서 늘 최상의 컨디션을 가졌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그는 지난해 6월 국립발레단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1998년 국립발레단 입단 후 그야말로 쉬지 않고 달렸어요. 주위를 곁눈질할 틈 없이 오롯이 제 동작에만 신경을 썼지요. 그러고 보면 참 이기적인 몸짓이었어요(웃음). 그러다 어느 순간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아닌 나와 호흡을 맞추는 또 다른 이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음악이 몸에 들어오고, 객석이 보이고…. 비로소 진짜 춤을 추기 시작한 거지요. 4∼5년은 정말 원 없이 '행복하게' 춤을 췄습니다."

이기적인 몸짓을 벗고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동시에 그에겐 새로운 무엇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가고 싶은 시기가 오더라고요. 국립발레단 안에 있으면 물론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1년에 150여편의 무대를 정신 없이 소화하는 것보다, 주어진 것만 표현해내는 것보다, 한 작품에 정성을 쏟아 나만의 독창적인 색깔로 빚어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홀로서기가 그리 녹록지는 않다. 무대에 올릴 공연을 선택하고 기획하는 일련의 일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롯이 스스로 완성해야 할 몫이다. 혼자 무언가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그러나 새롭게 인생의 방향을 찾고 설계해나가는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한껏 묻어났다.

◇발레 인생 제2막, '마그리트'를 만나다

때는 2000년. 김주원이 갈라 공연 연습을 위해 한달 정도 영국 런던에 머물던 시기였다. 어느 날 프랑스 무용수 실비 길렘과 니콜라 르 리슈가 나오는 발레 '마그리트와 아르망'를 마주하게 된다.

"'단 35분 만에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객석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이런 귀한 작품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볼 수는 있을까? 하며 마음속에 잘 간직하자'는 생각을 했지요."

마그리트와 김주원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전설적인 작품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꿈만 키워나갔다. '언젠가는 이 작품을 해보리라'는 바람은 지난해 여름 마침내 결실을 봤다. 세계적 안무가 프레데릭 애슈턴(1904∼1988)의 '마그리트와 아르망'을 동양인 최초로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번 공연에는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리는 로열발레단 출신 발레리노 이렉 무하메도프는 물론 국립발레단 출신 발레리노 이원철ㆍ윤전일,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부부인 황혜민과 엄재용 등이 가세해 다양한 파드되(2인무)를 선보인다. 이재용 감독은 공연에 앞서 김주원과 애슈턴의 작품세계를 엮어 단편영화 형식의 영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주원은 "'마그리트와 아르망'이라는 작품 앞에 김주원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게 미안할 정도로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의 노고가 정말 많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진짜 마그리트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애슈턴이 마고 폰테인에게 헌정한 작품이지만 내가 녹여낸 또 다른 나만의 색깔을 가미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끊임없는 날갯짓, 늘 변화를 꿈꾸다



"해외공연 일정 외에 2박3일 이상 홀연히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무궁무진하거든요. 힘들다기보다는 오히려 일을 안 할 때 몸살이 오는 것 같아요." (웃음)

끊임없이 움직여야 산다는 김주원에게 '정체(停滯)'라는 단어는 물과 기름 같아 보였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만큼 그의 일정은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빡빡하게 짜여 있었다. 당장 다음달 '마그리트와 아르망' 공연이 끝나면 5월께 음악ㆍ발레ㆍ현대무용ㆍ미디어아트ㆍ사진ㆍ조명ㆍ3D 등 모든 장르가 융합된 새로운 스타일의 공연도 선보일 계획이다.

"순수 클래식 공연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시도로 관객에게 다채로운 장르를 보여줘야 한다는 데 공감하거든요. 앞으로도 관객과 보다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발레 작품을 꾸준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물론 발레리나 김주원의 활동반경은 발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수로서 후학양성은 물론 일찍이 뮤지컬 출연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활동을 이어온 그다. 김주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MBC 예능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3'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

"몸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니 몸으로 익힌 언어도 많아야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다방면에 대한 경험과 공부도 중요한 것 같아요. 경계를 두기보다 최대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자 합니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으로 인생 2막을 펼쳐 보이는 발레리나 김주원. 고인 물은 썩는 게 마련이듯, 그는 늘 새로운 도전으로 한 걸음 도약을 꿈꾼다.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일 때마다 매번 매진이었어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작품을 하는데도 관객들이 매번 찾아와주니 감사하지요. 그분들이 건네는 말씀 중에'해마다 더 (표현이) 깊어졌다'는 얘기가 참 좋더라고요.'최고예요' '아름다워요'라는 찬사를 받는 것보다 '또 다른 무언가를 쌓아가며 항상 변화하는 예술가'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아티스트' 김주원의 꽃은 아직 만개(滿開)하지 않았다. 갈수록 짙어지는 그만의 향기가 궁금하다.

She is…

▲1978년 부산 ▲1997년 모스크바 볼쇼이발레학교 졸업 ▲1998∼2012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2012년 제20회 러시아 브누아 드 라당스 심사위원 ▲2012년 6월∼ 국립발레단 객원 수석무용수 ▲2012년∼ 성신여자대학교 무용예술학과 전임교수

■ 주요 수상경력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여자 동상 ▲2002년 문화관광부장관상, 한국발레협회 프리마발레리나상 ▲2004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6년 제14회 러시아 브누아 드 라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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