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을 하루 앞둔 1일. 김모(70)씨는 동네 경로당에서 귀에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족한 생활비에 허덕이던 이웃 최모(68)씨가 최근 법원에 부양료를 청구해 아들로부터 매달 30만원씩 지급받게 됐다는 얘기였다. 10여 년간 아들들과 소원해져 연락이 거의 끊어졌던 김모씨는 불안한 생계 때문에 얼마 전 아들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지만, 냉대만 받고 서운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최모씨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법리적인 방법을 통해 자식들에게 생계비를 위해 지급받을 수 있는 ‘부양료 청구’ 절차를 알아보기를 결심했다. 아내와 이혼한 후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 등을 앓으며 고시원에서 홀로 살고 있던 신모(71)씨.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어 자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최근 법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법원은 “부양의무는 부모와 자녀라는 혈연관계에 기초해 서로에 대해 마땅히 요청되는 것이기에 과거 부모의 행적과는 무관하다”며 “신씨의 세 자녀들은 한 달에 8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자녀들은 “가족을 외면해놓고 이제 와서 부양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혈연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의무를 인정했다. 최근 들어 신씨처럼 자녀로부터 부양료를 지급받기 위해 법원에 부양료 청구 신청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2000∼2003년 적게는 연간 13건, 많게는 24건이었던 부양료 청구 사건이 2004∼2009년에는 최소 39건, 최대 58건으로 늘었으며 올해 1∼8월에는 36건이 접수되는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법리적으로 보면 부양료는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청구하는 것뿐 아니라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상대로 하거나 혹은 부부 중 경제력이 없는 한쪽이 배우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부양료 청구 심판 절차의 경우 간단한 서류를 제출하면 밟을 수 있다. 비용 또한 저렴하며 법이 정한 몇 가지 요건을 갖추면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현행 민법은 직계혈족이나 그 배우자 사이, 동거하고 있는 친족 간에 부양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청구하는 이가 자력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부양 의무자에게 경제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면 부양료 청구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양측의 경제적 상황과 부양료를 청구한 부모의 건강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부양료의 액수 역시 양측의 생활 형편이나 관계 등을 통틀어 고려한 후 결정된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법 지식의 대중화로 부양료 청구권을 알게 된 노인이 증가했고 법원에 호소해서라도 생활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식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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