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정부가 목표로 정한 해외건설 수주 700억달러 달성이 사실상 실패했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양적인 실적 위주인 정부의 해외건설 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수년 전 본격화된 중동시장 진출과 양적 팽창에서 비롯된 국내 업체 간의 출혈 경쟁 및 저가 수주의 후유증으로 상당수 대형 건설사들이 거액의 적자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정부 당국은 여전히 '보여주기 식' 해외건설 정책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해외수주 실적은 587억6,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584억8,400만달러보다 채 1%도 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각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에 피치를 올리면서 최근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잇따르고 있지만 지난해 실적이 648억8,800만달러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올해도 목표했던 700억달러 달성은 사실상 실패라는 게 업계는 물론 국토부 안팎의 전망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700억달러 목표 달성 가능성은 희박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수익성 악화의 징후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뚜렷해진 업체들의 경우 올 들어 적극적인 수주전을 펼치기 어려워지면서 업계 전체로도 지난해 이상의 수주 물량 확보가 힘들 것으로 일찌감치 전망됐다는 얘기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조심스러웠던 분위기는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1·4분기 거액의 영업적자를 내면서 더욱 위축됐다"며 "이런 분위기 탓에 수익성을 확신할 수 없는 프로젝트는 일찌감치 포기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건설 업계의 전략은 신중한 자세로 전환돼가는 상황에서도 정부 당국의 지원 정책은 목표 달성에 편중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국토부는 지난 6월 건설 업계의 상반기 해외수주 실적 305억달러를 발표하며 '하반기 우리 기업들이 400억달러 이상 수주를 달성해 올해 목표인 700억달러 이상의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3·4분기까지 실적이 448억달러에 그치자 '올해 수주목표 달성을 위해 남은 기간 적극적인 수주 지원 활동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건설 정책의 방향이 수주 목표 달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한승헌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건설사들이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발생되는 수익성 및 리스크 문제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상황"이라며 "특히 정부의 수주액 성과만을 편애하는 관리방식과 우리 건설사들의 보여주기 식 해외시장 진출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토부는 내년부터 해외건설 정책의 주안점을 수주 금액보다 수익성과 내실화에 두겠다는 입장이다. 김기대 국토부 해외건설정책과장은 "해외건설협회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내년 2월 출범하는 정책지원센터에서는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게 될 것"이라며 "아울러 해외건설의 채널을 기업 대 기업에서 정부 대 정부로 확대해 건설사들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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