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한테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박수 쳐주고 싶은 느낌이에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7승에서 8승이 터지기까지 2년2개월이 걸렸다. 이 사이 절친한 박인비는 메이저 대회 3연승(2013년) 대기록을 세웠고 신지애는 지난해 미국 생활을 접고 일본 투어에 뛰어들었다. 최나연(28·SK텔레콤)은 '박인비의 활약이 자극이 되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신지애처럼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최나연과 신지애는 LPGA 투어를 호령하는 한국인 '원투펀치'였다.
박인비·신지애와의 비교와 함께 우승 가뭄에 대해 물을 때마다 최나연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우승만 없지 제 골프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승이 나오겠죠." 그 언젠가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최나연은 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골든 오캘러GC(파72·6,541야드)에서 열린 코츠 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16언더파를 기록, 2위 그룹과 1타 차로 우승했다. 2015시즌 개막전부터, 그것도 3라운드까지 2타 차 열세를 뒤집는 짜릿한 역전승으로. 지난 2012년 11월 CME그룹 타이틀홀더스 이후 2년2개월 만의 LPGA 투어 통산 8승이자 프로 통산 14승(한국 투어 6승)이었다. 최나연은 "오랫동안 우승이 없어선지 오늘 많이 떨었다. 퍼터를 제대로 잡기가 힘들 정도로 마지막 홀까지 긴장을 많이 했다"며 "첫 우승 때의 느낌을 다시 찾게 돼 기분 좋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번 시즌을 치러나가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4,000만원)를 보탠 최나연의 LPGA 투어 통산 상금은 974만7,000달러가 됐다. 1,000만달러가 눈앞이다. 우승 없는 시간 동안에도 덤덤해 보였던 최나연은 이제야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스트레스가 심해 골프를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는 것.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늘 골프클럽을 잡고 있었다. 지난 2년간 최나연은 컷 탈락이 단 두 번이었다.
그는 더 높은 목표도 얘기했다.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었는데 벌써 이뤘으니 다시 한 번 높이 뛰어야죠. 탄력을 받았으니까 최고 시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3승 정도 해야죠. 경기력이 작년, 재작년에 비해 좋아진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습니다."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최나연은 2승이 한 시즌 최다승이다. 메이저 1승(US 여자오픈)이 포함된 2012년이 가장 빛났다. 이번 대회의 경우 '메이저'는 아니지만 세계랭킹 50위 내 선수들 중 49명이나 출전했다. 최고 시즌이라고 했으니 최나연은 메이저 통산 2승째를 포함한 시즌 3승 이상으로 목표를 재설정한 셈이다. 그는 "엄마가 플로리다에 와서 응원할 때 항상 성적이 좋았다. 엄마에게 영광을 돌린다"고도 했다. 미국 진출 뒤 어머니 앞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다.
2타 차 단독 3위로 최종 라운드를 출발한 최나연은 단독 선두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막판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다. 1타 앞선 15번홀(파3)에서 최나연은 티샷을 홀 2m에 붙이고도 3퍼트 보기를 했다. 같은 조 리디아 고가 먼저 10m 넘는 버디에 성공하자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듯 보였다. 2타 차로 달아날 기회에서 1타 차 열세로 상황이 급변한 것. 이후 17번홀(파4)에서 최나연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리디아 고가 티샷을 오른쪽 벙커에 빠뜨린 뒤 벙커샷 실수로 더블 보기를 적어낸 것이다. 최나연은 이 홀을 파로 막아 선두를 되찾았다. 마지막 홀에서 둘 다 파로 마치면서 최나연은 1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이날 버디 6개에 보기 2개로 4타를 줄인 최나연은 퍼트를 24개로 막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도 국내에서 보내지 않고 일찍 미국 올랜도로 돌아가 훈련한 효과를 본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최나연은 그린 적중률 76.4%(55/72)에 페어웨이 안착률 75%(42/56)를 앞세워 버디 22개를 잡았다.
리디아 고, 제시카 코르다(미국), 장하나(23·비씨카드)는 15언더파 공동 2위로 10만4,000달러씩을 챙겼다. 특히 2013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 출신 장하나는 최나연·리디아 고와 마지막 날 같은 조로 우승을 다투면서 LPGA 투어 데뷔전에서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인비는 4언더파 공동 13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7언더파 공동 8위로 마쳤다. 공동 8위까지 10명 안에 한국인이 5명 포함될 정도로 개막전부터 느낌이 좋다. 올해 한국은 2009년의 12승(재미동포 미셸 위 1승 포함)을 넘어 LPGA 투어 한 시즌 최다승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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