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후 아파트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소형의무비율 폐지라는 규제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정작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심의'라는 보이지 않는 규제를 이용해 이를 저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규제 철폐가 일선 지자체의 벽에 가로막히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재건축 아파트의 소형의무비율 폐지안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을 20일자로 입법예고한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입법예고는 지난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규제개혁의 첫 번째 후속조치다.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평형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규제를 풀어 주택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주택 재건축 사업 때 전용 60㎡ 이하 소형 주택의 의무비율을 일선 시도 조례에 위임하고 있는 규정을 없앴다. 85㎡ 이하 국민주택 규모를 전체의 60% 이상 짓는 규정은 유지하되 세부 면적별 구성은 사업주체인 조합이 시장상황에 맞게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소형주택 공급비율을 일률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각 정비구역별 특성이나 인근 주택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85㎡ 안팎의 중형 위주로 구성된 중층 재건축 추진단지는 소형 아파트를 짓지 않아도 돼 지체됐던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법 규정까지 고쳐 규제완화에 나섰지만 서울시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시장에 온기가 그대로 전해질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건기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강남 일부 단지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소형의무비율 폐지에 대한 반대의견을 정부에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법적근거는 사라지겠지만 앞으로도 시 도시계획위원회 등을 통해 소형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짓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조례'라는 법 규정이 아니더라도 '심의'라는 수단을 통해 앞으로도 규제를 계속 유지해나가겠다는 의미다. 앞서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직후인 지난 2012년부터 개포지구·가락시영·둔촌주공 등 강남권 재건축 추진단지에 대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과정에서 60㎡ 이하 소형주택을 30% 이상 짓도록 하는 이른바 '30%룰'을 기준으로 삼아 관철시켰다. 이는 소형 비율을 20%로 정한 서울시 조례보다 높은 것이어서 당시 많은 논란을 빚었었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법 규정과 서울시의 가이드라인의 충돌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중층 재건축 추진단지로 꼽히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4,424가구 전체가 76~84㎡로 구성돼 있어 시의 30%룰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상당수 조합원들이 재건축 후 면적을 줄여야 하는 탓에 지금까지 사업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형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강남권 재건축 추진단지 중 상당수가 법적근거도 없는 서울시가 요구하는 소형 비율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규제를 철폐하더라도 일선 지자체의 대못을 뽑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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