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돌변이다. 충분한 설명도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8일 열린 미ㆍ중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에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양국은 각각, 또는 합동으로 각종 기후변화 대응대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은 이런 나라들이 아니었다. 미국은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정한 교토의정서에서 2001년 탈퇴한 후 기후변화 이슈에 아주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2013년 이후의 국제적인 온실가스 규제체제인 포스트 교토체제에도 중국과 함께 반대했다. 자국산업 보호가 이유였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유럽 중심의 온실가스 규제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기류가 숨어 있다. 즉 유럽이 '지구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기후변화 이슈를 들고 나오고 있지만 실은 이를 통해 그동안 미국에 빼앗겼던 글로벌 정치ㆍ경제 헤게모니를 되찾아오려 한다는 속셈을 알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이를 알았기에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론'을 강조하면서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
이랬던 미국과 중국이 갑자기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자세로 돌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유럽의 몰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위기가 지속되면서 유럽의 온실가스 규제체제 역시 사실상 무너졌다. 유럽의 배출권거래제 역시 배출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를 통한 글로벌 헤게모니의 탈환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미국이 이 이슈를 들고 나와도 유럽에 이용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유럽이 무너져 있는 틈을 타 미국이 이 이슈를 주도하면서 구체적인 대응체제까지 내놓는다면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글로벌 헤게모니의 유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국 역시 과도한 규제수준만 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은 주요2개국(G2)시대를 열어갈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동안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을 이제는 생각해야 하는 국내적인 상황도 중국이 과거보다는 온실가스 규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갖도록 하는 요인이다.
미ㆍ중이 그리고 있는 온실가스 규제방법 역시 이 같은 돌변을 설명해주는 변수다. 미ㆍ중은 유엔을 통해 기존 유럽의 규제체제와는 다른 규제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즉 유럽의 온실가스 규제체제는 국가적인 감축목표를 정한 뒤 각 산업, 기업별로 내려가는 탑ㆍ다운의 강력한 규제체제이다. 반면 유엔은 이 같은 강력한 규제로는 많은 나라들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각국의 자발적인 감축노력에 중점을 두는 바텀ㆍ업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수준의 규제라면 미국도, 중국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자국의 경제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불리는 미국의 에너지 패권 역시 미국의 돌변을 설명하는 변수 중 하나다. 그동안 발전 부분에 있어 기후변화 대응은 주로 석탄발전을 원자력발전으로 대체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터지며 반 원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원전이 아니라면 대안은 가스발전이다. 석탄ㆍ석유ㆍ가스 등 전통 에너지원 중 온실가스 발생이 가장 적은 것이 가스발전이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천연가스가 넘쳐나는 미국으로서 가스발전 확대는 중요한 정책방향이다.
산업적으로 보면 기후변화를 매개로 한 각종 표준의 선점을 이번 돌변의 이유로 볼 수 있다. 유럽이 주도하던 온실가스 규제가 무너진 틈을 타 기후변화 관련 각종 규제의 틀을 미국 중심으로 재구축함으로써 글로벌 산업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각종 상품과 인프라의 에너지표준 강화, 구체적인 기후변화 대응기법의 개발과 적용 등이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때문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여전하지만 현실세계는 힘 있는 나라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미ㆍ중 양국이 온실가스 규제체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우리는 좋든 싫든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양국의 움직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