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전체가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 빠져 있던 1998년, 약관의 박세리 선수가 맨발의 투혼으로 세계 최고 귄위의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온 국민은 그가 18홀 연장전서 양말까지 벗어던진 채 연못에서 공을 쳐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만 먹으면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때와 또 다른 침체의 고빗길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할 청년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한창 일할 중·장년은 언제 직장을 잃을까 하는 노심초사로 사회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수출은 끝없는 부진의 늪에 빠졌고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3% 성장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경기 활성화의 최소 조건인 4대 개혁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처지다. 박인비 선수 개인에게도 위기 상황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승을 향한 집념과 끝내 흔들리지 않는 멘털로 4라운드 14번 홀에서 회심의 이글퍼팅으로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거둔 또 하나의 수확은 '한국에서 1등은 세계에서 1등'이라는 자부심이다. 이미 전인지 선수가 US오픈에서 보여줬고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고진영 선수가 다시 증명해냈다. 한국 여자골프는 지금 멈출 줄 모르는 도전정신을 온몸으로 일깨워준다. 한국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