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이틀 연속 기습적으로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면서 세계 증시와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안화 절하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맞물려 지난 1990년대처럼 신흥국 외환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공포에 질린 글로벌 금융시장=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위안화 절하의 후폭풍에 1% 이상 급락했다. 중국 경기둔화 우려에 원자재 가격도 수직 낙하했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4.2% 급락한 배럴당 43.08달러를 기록했다. 2009년 2월 이후 6년여 만에 최저 수준이다.
주요 원자재로 구성된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1.6% 하락했다. 구리와 알루미늄 가격은 각각 3.5%, 2.1% 하락하며 6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반면 투자가들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이날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날 대비 0.09%포인트 하락한 2.14%를 기록했다.
12일 아시아 금융시장도 추가적인 위안화 절하 소식에 이틀 연속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증시가 1.6% 하락한 것을 비롯해 대다수 아시아 증시가 하락했고 주요국 통화가치는 약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기둔화가 지속될 경우 위안화가 추가 절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로 수출이 둔화됐을 때도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며 "최근의 움직임은 중국 정부가 경제안정에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1990년대 신흥국 외환위기 데자뷔=중국의 위안화 절하에 글로벌 환율전쟁은 더욱 불붙을 기세다. 이날 베트남중앙은행(SBV)은 자국 통화인 동화 기준환율의 하루 변동폭을 기존의 1%에서 2%로 확대했다. 무역적자 축소와 수출경쟁력 확대를 위해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위안화 절하를 틈타 동화 가치를 낮춘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데이비드 우 금리·외환연구소 수석은 "통화절하 경쟁이 아시아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티븐 젠 국제통화기금(IMF) 전 이코노미스트도 "앞으로 9개월간 신흥국 통화가치가 평균 30~50% 추락할 위험이 있다"며 "브라질·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모든 원자재 수출국의 통화를 팔라"고 권고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발 환율전쟁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위안화 절하는 연준 통화정책 정상화의 걸림돌이지만 오는 9월 금리인상 경로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또 중국 등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미 경제까지 그 영향을 다소 받더라도 연내 금리인상은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처럼 중국 위안화 절하와 연준 금리인상이 겹치면서 신흥국 통화가치 추락을 부채질하고 외국인 자금의 엑소더스(대탈출)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94년 중국은 정부가 통제하는 '계획무역'에 사용하는 '공정환율'과 시장 수급을 반영한 '시장환율'을 일원화하면서 기존의 공정환율을 달러당 약 5.8위안에서 약 8.7위안으로 평가절하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당시 중국은 수출경쟁력 확보로 경제가 회복됐지만 연준의 금리인상과 더불어 신흥국 통화 약세를 촉발해 1994년 멕시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있다"며 "최근 태국 밧화, 필리핀 페소화 등 아시아 통화 하락은 1994년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