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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갤러리 드나드는 마약상-하버드 출신 성매매 브로커, 모든것이 뒤섞여버린 도시

■ 플로팅시티(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어크로스 펴냄)

부유층 자제·흑인 여피족 등 다양한 개인들 공동체 형성

마약·섹스산업 새 네트워크

경계를 넘나드는 온갖 군상… 10년 탐구 지하경제 파헤쳐



책은 뉴욕 소호의 한 갤러리에서 시작된다. 전시의 오프닝 파티가 막 열렸다. 밝고 점잖은 이곳에서 그림 거래와 함께 마약 거래가 성사됐다. 흑인 마약 판매상 샤인은 한 때 잘 나가는 할렘의 마약상이었지만 마약업계가 침체기로 접어들자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는 싸구려 코카인을 파는 대신 돈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고자 사회의 경계를 뛰어넘는 모험을 감행하는 중이다. 그가 갤러리에서 만난 젊은 여성 엘리트 아날리스는 부유한 금융업자의 딸이며 하버드 출신의 재원이다. 샤인과 아날리스는 "저 이거 사려고요"라며 작품을 얘기했지만 자연스럽게 다음 날의 마약 파티를 위한 거래를 이어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소설이다. 통속적인 전개라면 서로 다른 배경과 계층에 속한 이들 남녀가 사랑에 빠지거나….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현재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이다. 상황의 기록자이자 '나'로 책을 이끌고 있는 저자는 사회학자다. 전문용어로는 사회학자 중에서도 민족지학(ethnography) 연구자로, 일반적인 사회학 연구와 달리 민족이나 특정 집단·계층의 생활에 뛰어들어 그 삶을 생생하게 연구하는 사람이다. 전작 '괴짜 사회학'은 시카고 빈민가에 뛰어들어 10년간 갱단과 생활하며 연구한 결과물이었고 세계적 명성을 얻게 했다. 이번 새 책에서 저자는 10여 년 이상 탐구한 뉴욕의 지하경제를 까발렸다. 암거래 현장을 알아가는 데 마약상 샤인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엘리트 아날리스는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왜 마약상은 갤러리를 택했을까?

"이곳은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명문가에서 신탁자금으로 사들인 갤러리다.…월스트리트에 갓 입성한 사람들, 나이트클럽에서 살다시피 하는 젊은이, 빈민 행세하는 부유층 자제, 심지어 이제 막 합세한 할렘의 촉망받는 흑인 여피족까지 모두가 어울리는 공간이자…(후략)"

지하경제로만 숨어다니던 마약상에게 이런 다양한 군상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갤러리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뉴욕 같은 거대도시에서는 다양하게 파편화된 개인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낯선 사람들과 유대를 형성하며 겉도는 듯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했다. 지하경제의 네트워크가 새 터전으로 잡기에 제격이다. 마약 뿐 아니라 섹스산업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만 해도 창녀가 길에서 영업했지만 도시 재정비 사업과 치안 강화로 매춘부들은 길에서 사라졌다. 대신 지하경제에서 새로운 조건으로 더 큰 시장이 형성돼 막대한 돈이 떠돌고 있다는 게 저자의 연구 결과다. 중산층 백인 여성 마고는 저임금의 부족분을 성매매로 채운다.



제목은 느슨한 인간관계와 떠돌거나 떠 있는 듯한 도시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플로팅(floating)이라는 단어에서 왔다. 하버드 출신의 성매매 브로커, 갤러리를 드나드는 마약상, 포르노를 제작하는 상류층 자제 등 계층을 넘나들며 '탈선'을 넘어 '성공'하는 이들에게서 저자는 몇 가지 공통점도 찾아냈다. 돈이 아닌 '제2의 통화'로 '문화'가 지배한다는 사실. 이를 '문화자본'이라고 칭한 저자는 상류층은 이것을 타고 났지만 지하 세계에서도 이를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고 묘사했다. 또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면서도 어느 한쪽이 아닌 제3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재자(broker)의 '연결성', 지하경제에서도 꼭 필요한 '기업가 정신' 등이 포착됐다.

흥미진진한 사회학적 탐사 보고서다. 그러나 기존 사회학 서적이 익숙한 탓에 현장 조사의 사례들이 오히려 정리되지 못해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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