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여제의 연주는 압도적이면서 정열적이었다. 그는 수년간 자신을 말없이 기다려준 관객들에 대한 깊은 감사와 사랑을 바이올린 선율에 담아 쏟아냈다.
지난 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에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기대를 넘어선(Beyond Expectation)'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정경화의 바이올린 독주회는 그녀의 명성을 넘어선,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완벽 그 자체였다.
2,000석이 넘는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붉은 빛 공단 드레스를 입은 정경화가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던지며 연주를 시작하자 쥐 죽은 듯 조용해지며 황홀한 선율에 빠져 들었다. 파트너 케빈 케너와 함께 꾸민 이번 무대는 '봄'이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으로 시작해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그리고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으로 마무리 됐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은 도입부가 베토벤답지 않게 달콤하고 유려한 선율이 특징이며 4악장은 여러 차례 색다른 리듬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변화무쌍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탄탄한 구성과 아름다운 선율로 북유럽의 황량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연주곡인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매혹적인 화성과 유려한 멜로디로 바이올린 선율이 일품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화려하면서도 정확한 연주로 정평이 나 있는 정경화가 바이올린 여제로서 건재를 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곡이라는 평가다.
65세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때론 팔락거리는 나비처럼 유려하고, 때론 먹이를 찾아 헤매는 독수리의 매서운 눈빛처럼 날카로운 선율을 들려줬다. 지난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6년여간 연주를 중단했던 정경화에게 이번 무대는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는 동시에 아픔을 딛고 한 단계 성숙한 '진정한 거장'으로 올라섰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가졌던 몇 차례의 재기 무대에서 불안해 보이는 선율로 다소 부족했다면 이번 무대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완벽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지난 봄 일본 4개 도시 투어 공연의 대성공에 이어 10월엔 중화권 7개 도시 투어 공연에서 대대적인 찬사를 받았던 만큼 이번 국내 리사이틀 무대가 갖고 있는 의미는 적지 않다. 정경화는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드뷔시의 '아름다운 저녁',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앙코르 곡을 4곡이나 들려줬다. 특히 마지막 곡을 연주한 후에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자 두 팔로 하트 표시를 여러 번 하면서 깊은 감격에 젖기도 했다. 한편 정경화의 아시아 투어 공연은 오는 12일 이화여대 음악당 김영의홀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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