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초 일본은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당시 육군과 해군의 물자전을 온 나라가 떠받치던 상태에서, 일본 대장성(재무성)은 당시 돈으로 3,000억엔 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300조엔을 전비(戰費)로 편성했다. 당연히 일본 내륙뿐만 아니라 식민지 곳곳에서 갈취한 돈까지 포함한 금액이었다. 이토록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긴건 ‘철저한 인건비 절감’ 원칙이었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인데 국민이라면 희생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논리를 펴면서. 전시 체제를 담당했던 재무장관 가야 오키노리는 패전 후 10년의 징역살이를 하고 나와서까지 “낭비를 줄였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몇년간 전쟁을 할 수 있었다”고 뻔뻔한 괴변을 늘어놓았을 정도다. 위정자들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근거로 희생을 강요했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을 펼친 것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노동에 따른 대가 지불이라는 동기(motivation) 측면을 깡그리 무시하고 전쟁에 투입했으니, 지는 것도 당연했다. 승전국인 미국은 전쟁 관련 산업에 종사한 사람들에게 지급한 보상 수준이 일본의 20배가 넘었다고 한다. ‘정신 승리’는 허상에 불과하다.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인건비이기 때문에 덜 주고 안 주면서 억지로 명분을 만들기 위해 하는 변명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전시 체제의 발상이 21세기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선 정부의 노동개혁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머지않아 고령화 사회가 되는 현실에서 임금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적용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는 개혁이냐, 아니면 ‘나라를 위해 일단 눈을 감고 희생하자’는 군국주의적 처방이냐는 ‘아’ 다르고 ‘어’ 다른 문제다.
일단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015년 안에 실행하겠다고 밝힌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보자. 임금피크제는 숙련 노동자에게 인건비 감축을 예고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조치다. 58세 근로자에게 ‘2년 더 다닐래, 아니면 지금 그만 둘래’라고 물어보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뚜렷한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근로자에게 ‘나가라’는 것은 하루에 수십 곳이 문을 열고 수백 곳이 문을 닫는 자영업자의 길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애초에 이야기한대로 신규채용을 줄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결국 똑같은 크기의 파이를 얼마나 잘 나누느냐가 문제다. 사람은 늘었는데 나눌 파이는 크기가 그대로니 누군가는 덜 먹어야만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도입이 시급하다는 임금피크제는 정년까지 다닐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해줄테니 청년세대를 위해 고통을 분담하라는 소리다. 단, 모든 근로자가 정년 60세까지 일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뒤집어 생각하면 갓 취업한 청년 세대가 고통을 분담하라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선배가 정년을 꽉 채울 수 있게 후배가 적은 연봉을 책정받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허울뿐인 노동개혁’이라고 불만을 가질 만하다. 따지고 보면 양쪽 다 피해자인데 서로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다. 태평양 전쟁 못지않은 노동 전쟁이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한 회사가 직원들의 사내 벤처를 장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패하더라도 돌아와서 다시 일 할 수 있다는 점을 사주가 보증까지 해줬단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실상을 알고 보니 기가 막히다. 사업의 담보가 퇴직금과 연동돼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창조와 도전을 장려하면서, 실상은 퇴직 급여를 줄이는 ‘절감’ 정책이다. 정리해고를 잘도 포장했다. 투자를 늘리는 대신 근로자에게 나중에 줘야 하는 자원을 미리 효율적으로 분배하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피날레’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가입한 청년 펀드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 조성이 주된 목적이다. 청년 펀드는 위탁형이 아니라 기부형이다. 따라서 원금이나 이자를 돌려받을 수 없는 게 핵심이다. 최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국체보지’(國體保持)를 위해 청년 펀드에 가입하고 전 직원이 가입하도록 ‘독려’했다. 뒤늦게 ‘의무가입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은행 영업점 직원들에게 1인 2구좌 이상 가입을 독촉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성과가 최우선인 사기업에서 가능한 일은 아닌 듯싶은데 은행이 발 벗고 나섰다. ‘전쟁’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단한 애국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개인의 인센티브(incentive)다. 한 사람이 국가나 공동체를 위해 공적인 투자를 했을 때, 유형·무형으로 그 가치를 돌려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노동개혁의 방향이 꼭 필드 내부에서 서로의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작동하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렸다는 노동개혁이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강조했던 ‘정신 승리’나 ‘총력전’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면 정말 씁쓸한 일이다. 국민 대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정부의 ‘창의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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