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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혜·정직성 2인전 누크갤러리 12월7일까지
딱딱한 검은색 철제 프레임에서 발레리나의 부드러우면서도 리드미컬한 발동작을 느껴보겠는가?
조형의 구조적인 면에 관심을 두고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본 단위인 픽셀로 표현하는 작가 홍승혜(55)의 설치작품이 삼청동 누크갤러리에 자리를 잡았다. 삐딱하게 놓인 철제 구조물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나뉜 계단 모양이다. 모르고 지나치다간 관람객의 동선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치부될 수도 있고, 무심히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작품일 수도 있다. 같은 크기지만 그 사각 틀의 한쪽 면은 둘로, 그 맞은 편은 셋으로, 그 옆 작품은 넷으로 다시 맞은 편은 둘로 나뉘어 있다.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계단을 뜻하는 스텝(step)은 순간 발레리나의 스텝으로 바뀌며 리듬감을 전한다. 쉽지 만은 않지만 반복되는 규칙성에서 율동감을 찾고 또 그 안에서 파격의 묘미를 발견하는 것. 이게 바로 홍승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다.
벽에 걸린 강렬한 색채와 필치의 그림은 작가 정직성(38)의 신작들이다. 그림의 밑면에는 채도 높은 선명한 색을 칠하고 그 위를 낮은 채도의 색으로 덮어 눌러 교묘하게 평정심을 유지한 작품이다. 굵직한 붓질 사이사이에서 미세한 떨림들이 배어난다. 그 터질듯한 감성을 느낄 수만 있다면 무엇을 그렸는지는 모르고 봐도 상관없을 그림들이다. 굳이 작품의 주제가 궁금해 작가에게 묻는다면 “산업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기계 부품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계문명은 단순히 합리적인 산업화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직관적으로 그 기능을 파악하고 재조립 같은 수공을 통해 재탄생할 수 있음에 주목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고 보면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에서 물컹한 내장(內臟)의 온기가 느껴진다. 기계의 형태는 뭉개졌으나 그 작동원리와 움직임은 강렬한 필획으로 남아 추상적 조형미를 형성했다.
이번 2인전을 기획한 조정란 누크갤러리 디렉터는 “냉정한 픽셀로 작업하는 홍승혜와 차가운 기계를 소재로 한 정직성 작가에게서 20세기 초 페르낭 레제(1881~1955)같은 ‘기계미학’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갤러리 2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북촌과 인왕산 단풍의 절경을 전시의 덤으로 즐길 수 있다. 12월 7일까지. (02)732-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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