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種상향·용도 변경, 문화영향 평가도 실시해 결정"
가락시영처럼
종상향 가능한 단지 1~2곳 정도밖에 없어
미래도시 시민과 공유, 이른 시일내 비전 공개
버스·지하철 요금
내년초에 올리는 쪽으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정부는 생색만 내고있어 지원금 강력 요청할 것
인천과 수도권매립지 갈등
양측 신뢰 회복이 우선, 실무TF통해 잘 해결될것
관리공사 지배구조 개선, 지자체 의사도 반영해야
"혹자는 '4대강 개발'에 비유하기도 합디다. 시장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면 안 돼요."
지난 15일 형형색색의 포스트잇과 수백 권의 책들이 사방을 빼곡히 메운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던 박 시장의 얼굴은 송파 가락시영아파트의 종 상향에 대한 의미를 묻는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8일 가락시영아파트는 2005년부터 염원해오던 3종 상향의 꿈을 이뤘다. 재건축시 최고 35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데다 일반분양물량도 1,000여가구 이상 늘어났다.
반면 박 시장은 취임 이래 가장 혹독한 홍역을 치렀다. 박 시장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해온 것. 특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경우 "토건시정 종식을 선언했던 박 시장이 토건시장이 되려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까지 열어 그를 비판했다.
박 시장은 "오해가 너무 많다"며 해명에 나섰다. "종 상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용적률은 20%만 늘어났고 그에 반해 임대주택은 220가구에서 1,179가구로 950여가구 이상 늘어났습니다." 인센티브는 많지 않고 공공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많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가락시영아파트가 나올 수 있을까.
박 시장은 "서울시 재개발ㆍ재건축에 관한 결정은 전적으로 '도시계획위원회'의 권한"이라는 입장을 확실히 하면서도 "이번 종 상향건을 모든 아파트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락시영의 경우 지하철 역세권인데다 송파대로와 접한 조건 등으로 종 상향이 가능한 주거지"라며 "비슷한 조건을 가진 단지는 시내 1~2곳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거지를 상업지로 용도변경하는 결정 등에 대해서도 "주거지를 상업지로 바꿔 재건축을 할 경우 단순히 집이 몇 가구 늘어나고 차가 막히는 등의 단편적인 고민보다 주변에 미칠 모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같은 맥락의 해답을 내놓았다.
그는 "건축물과 주거시설 등이 주민생활과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며 앞으로 종 상향이나 용도변경 등의 경우에 교통이나 환경에 대한 영향평가뿐 아니라 문화영향평가 등도 실시해 종합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문화영향평가란 단순히 주거시설과 관련한 평가에 더해 주민들의 공동체생활이 기능할 수 있도록 문화ㆍ복지ㆍ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함께 고려해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이와 관련해 서울시 도시계획에 관해 줄곧 견지해오던 생각도 밝혔다.
그는 "우선 서울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특히 도시의 미래에 대해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 세계 여러 도시를 둘러봤던 경험을 풀어놓으며 이해를 도왔다.
"런던에 가면 '뉴(New) 런던 아키텍처 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이 있는데 이 집무실 세 배 정도의 공간에 런던의 미래를 미니어처 형식으로 구현해놓은 것입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며 런던의 현재 모습을 비롯해 새로 지어질 건축물, 진행 중인 프로젝트 등이 다 표현돼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시청 별관에도 이런 모형이 있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싱가포르나 시드니에도 있다고 합니다. 미래도시에 대한 비전을 도시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셈이죠."
현재 단편적이고 단락적인 정보에만 의존해 건축허가나 심의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런 '비전에 대한 공유'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시장은 "비전이 있다면 시나 기업뿐 아니라 개인들 역시 건축물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며 "미래 서울을 담은 비전을 만들어 빠른 시일 내 공개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버스ㆍ지하철 등 대중교통요금 인상 시기는 내년 초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4년8개월 동안 요금이 동결됐기 때문에 인상 요인은 예전부터 누적돼왔다"며 "확정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중교통요금을 내년 초에 올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과 인접한 경기와 인천에서도 최근 요금을 올렸고 시의회에서도 요금 인상안을 의결한 상황이기 때문에 올리는 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인상액에 대해서는 "시의회가 결의한 150원 인상안으로 가더라도 (버스ㆍ지하철) 부채 규모를 조금 줄이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에서 (인상을) 더 요구할 경우 시의회에 다시 결의를 요청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사실상 시의회의 안에 무게를 실었다.
박 시장은 최근 여러 차례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대중교통 운영기관의 비용절감과 조직 혁신 방안에 대해 꼼꼼히 챙기고 있다. 박 시장은 "지하철공사의 경우 대부분이 기술 분야인데 그동안 특허를 얼마나 땄는지, 전동차도 이미 자체설계를 하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지하철을 건설하는 다른 나라에 우리가 어떻게 진출할 수 있는지 등을 직접 따져보고 있다"며 "이런 내용들이 정리되는 내년 초쯤에 전체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서울 지하철 운송적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노인무임수송손실금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에 지원금을 강력하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가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요금을 면제해주는 정책으로 생색은 혼자 내고 해마다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누적적자의 짐은 서울시에 떠안기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시장은 "실무진에 중앙정부가 압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계속 지원금을 요청하라고 지시했다"며 "그동안 연례행사처럼 해온 측면도 있지만 명분을 쌓고 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에 다시 한번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수도권 매립지 문제를 꺼내자 박 시장은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며 양 지자체의 꼬인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수도권 매립지는 인천에 위치해 있지만 전체 쓰레기 반입물량의 46%가 서울시에서 나온다. 매립지의 사용연한은 오는 2016년으로 서울시는 2044년까지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인천시는 악취 등 지역주민들의 계속되는 민원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양 지자체는 지난달 17일 본부장급으로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매립지 주변지역 악취 해소와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안정적 처리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박 시장은 "실무 TF가 구성돼 논의를 시작한 만큼 그 결과에 따라 잘 해결될 것"이라며 "다행히 송영길 인천시장과는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여서 충분히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아울러 박 시장은 수도권 매립지를 운영ㆍ관리하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지배구조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환경부 산하로 주요 사업과 예산을 결정하는 이사회가 공사 사장과 환경부가 추천하는 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실제 수도권 매립지에 쓰레기를 반입하고 부담금까지 내는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3개 지자체는 공사의 의사 결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박 시장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경우 정부가 여러 지자체의 입장을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지자체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없는 현 지배구조는 바꿀 필요가 있다"며 "공사에도 상당한 예산이 있을 텐데 그 예산이 해당지역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에게 10월 말 취임 직후 내년도 예산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지 말라"고 했던 발언이 이후 꾸준히 회자되며 화제가 된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집무실 한 켠에 놓여 있던 보도블록을 직접 집어들더니 "적어도 보도블록만은 확실히 챙길 것"이라며 "서울시 곳곳에 설치된 보도블록에 대해 어느 회사가 시공했고 내구연한은 얼마며 또 공사가 필요한 지역은 어디인지를 구글 지도를 활용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소개했다. 보도블록을 설치하고 관리ㆍ운영하는 기관은 서울시가 아니라 구청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권한이 구청에 있더라도 최종적인 정책의 책임은 서울시가 지기 마련"이라며 "시가 보도블록 설치 및 운영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구청에서 따르도록 유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시장님은 책벌레
어렸을때부터 책 욕심 많아 책보며 길걷다 논두렁에도 빠져
하버드대 객원 연구원 시절 법대 도서관 책 모조리 읽어
"정리해야 의미" 전투적으로 스크랩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박원순 서울시장은 책 벌레다. 그의 방배동 자택에 쌓여 있는 책만 해도 수만권이 넘고 그것도 모자라 친척집 공장 창고에 몇 만권이 더 있다. 인터뷰를 위해 박 시장의 집무실을 찾았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방의 한쪽 벽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책장 속에 빼곡히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이었다.
"제가 책 욕심이 참 많습니다.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며 길을 걷다가 논두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책은 청년에게 음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 위안이 된다'는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책은 박 시장의 젊은 시절부터 항상 함께했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후 시위 참가를 이유로 4개월간 감옥에서 보낸 시간과 출소 후 학교에 복학하려 했지만 받아주지 않아 다시 1년 동안 방황의 시기를 보낼 때 책은 그를 위로해준 친구이자 오늘날 그의 정신세계를 형성한 큰 자양분이 됐다.
박 시장은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유독 많다. 그중에서도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시절 법대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었던 일화는 그의 병(?)적인 책욕심을 설명할 때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당시 저에게 필요 없는 판례집이나 비즈니스에 관한 논문집을 빼고는 다 읽었죠. 그때 제 아내가 책 읽는 것을 도와주려고 복사를 하다가 기절한 적도 있어요. 복사기에 나오는 열이나 냄새가 그렇게 독한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죠."
박 시장은 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는 독서를 할 때 항상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시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이미 십수권의 책을 펴낸 다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정리하는 습관 때문에 가능했다.
"제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사실 전사나 다름없습니다. 독서와 스크랩만큼은 전투적으로 하거든요.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꼭 독서노트를 정리해요. 이 전쟁은 책에 국한되지 않죠. 신문ㆍ잡지ㆍ주간지 모두 스크랩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독서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시정을 펼쳐나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박 시장은 "물론"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정리할 때 한 가지 주제를 정합니다. 예를 들어 '리더십'이라는 주제하에 온라인으로 독서노트를 정리해놓으면 훗날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검색했을 때 제가 읽고 모은 자료와 당시의 경험들이 펼쳐지는 것이죠. 필요한 단어를 찾아가면 제가 정리해놓은 수많은 자료들이 주르륵 쏟아지는데 시정을 펼칠 때도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책 벌레 박 시장에게 마지막으로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과 가장 애착이 가는 저서를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기억에 남는 책이 적지 않아 선택하기 쉽지 않지만 한 권 고르라면 독일 법철학자 예링(Yhering)이 쓴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책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고 그 수단은 투쟁'이라고 썼는데 저를 법률가로 이끈 명구이기도 하죠. 제가 쓴 책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입니다. 오늘날 실업과 일자리를 얘기하지만 시대에 대한 통찰력과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는다면 일자리는 많이 있거든요."
약력
▦1956년 경남 창녕 ▦1974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법대 중퇴 ▦1982년 대구지검 검사 ▦1983년 단국대 사학과 졸업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1992년 영국 런던LSE 디플로머 취득 ▦1993년 미 하버드대 법대 객원연구원 ▦1993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2000년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 ▦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4년 포스코ㆍ풀무원 사외이사 ▦2006년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2007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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