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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In Depth] 세월호 침몰·지하철 추돌·인사 참사, 세종이라면…

■ 세종처럼, 세종이라면(박현모 지음, 미다스북스 펴냄)

세종처럼

세종이라면

재위 초반 관리 뇌물·가뭄 등 난국
"이따위가 임금이냐" 신뢰 추락하자
억새풀 집 짓고 고통분담 동고정치

직접 듣고 널리 물어 포퓰리즘 방지
신중하게 결정하되 실행은 과감하게
백성 중시 위기대응·열린 인재 등용

소통 헌신의 세종·리더십 현대사회 위기 돌파책으로


세종이라면 최근의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난국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여객선이 침몰하고 버스터미널ㆍ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났다. 지하철 추돌사고에 이어 AI 확산, 개인정보 대량유출 등 재난들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인사참사'를 부추긴다.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국가안보실장이 줄줄이 사임하고 새로운 국무총리 후보자는 전관예우 논란에 휘말려 내정 일주일만에 사퇴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이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세종의 리더십을 다시 돌아보는 책이 출간됐다. 세종 리더십의 전문가이자 한국형리더십개발원 대표인 박현모가 쓴 '세종처럼-소통과 헌신의 리더십'과 '세종이라면-오래된 미래의 리더십' 등 두권이다. 세종은 태평성세를 즐긴 임금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았고 결국은 성공했다.

사실상 세종도 재위 초반에는 지금의 대한민국과 다를 바 없는 난국이었다. 왕은 세종이었지만 상왕인 부왕 태종이 섭정을 하고 있었고, 태종에 의해 왕비의 가문이 파탄이 나는데도 말 한마다 못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백성들은 굶주렸다. 제주도로 곡실을 실어나르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한달이 지나고서야 들었는가 하면 연이어 터진 고위관리들의 뇌물수수와 성추문 사건으로 조정에 대한 백성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역관 임군례가 "이 따위가 무슨 대체를 아는 임금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하는 상황이었다.

세종은 당시 위기를 어?F게 극복했을까. 세종은 가정에서도, 조정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느끼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성들의 소리를 가장 가깝게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경복궁 사정전과 경회루 사이에 작은 억새풀 띠집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른바 '동고(同苦)' 정치에 들어갔다.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당시 군주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도를 한 것이다.

저자가 밝히는 '세종이 인심을 얻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광문'(廣問), 널리 물었다. 세종은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세미나식 국정회의를 통해 지식인과 관료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도 들음으로써 인기영합주의와 민심외면주의를 범하는 잘못을 방지했다. 다음으로 '서사'(徐思),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숙고했다. 세종은 특히 민생과 관련한 일에 있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나랏일에 백성이 잘 따르지 않고 폐단이 생기는 것을 관리들이 일을 빨리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이에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통해 관리들은 물론 백성들도 마음으로 따를 수 있게 했다.



세번째로 '정구'(精究), 정밀한 대안을 만들게 했다. 세종은 유능한 관료들에게 일을 맡겨 정밀한 대안을 만들게 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게 하고 경륜이 있는 이들에게 일을 맡겨 반드시 성취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끝으로 '전치'(專治), 전심전력해 실행하게 했다. 백성과 인재의 말을 듣고,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거친후 정밀한 대안이 마련되면 세종은 그 어떠한 반대에 부딪히더라고 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의 리더십은 실제 위기상황에서는 어떻게 발휘됐을까. 저자는 세종 재위 4~5년(1422~1423년) 강원도 대기근과 재위 8년(1426년) 한양도성 대화재를 사례로 들었다. 기근의 경우 현지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째였고, 그 다음에는 굶주린 백성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락했으며, 마지막으로는 구휼담당자를 기존의 아전들에서 승려들로 바꾸고 관찰사나 수령에게 책임을 지우는 형태로 구휼방식을 재정립했다. 도성 대화재 때에는 먼저 이재민 구호조치를 내리고, 그 다음엔 화재방지에 대한 대책을 세웠으며 전담기관을 설치하고 도성의 도로와 가옥구조를 개선하는 후속조치를 이어갔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세종의 정치를 해를 거듭할 수록 정비돼 갔으면 조선은 '태평성세'를 누길 수 있었다.

세종은 인재를 어떻게 등용했을까. 어느 시대나 인물이 없지는 않다. 지도자가 제대로 된 인재를, 적절한 자리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율곡 이이의 "세종대왕은 사람을 쓰되 자기 몸과 같이 했다. 현인과 재능 있는 이를 쓰되 그 부류를 따지지는 않았다. 임용한 사람의 말을 채택할 때 오롯이 해 참소와 이간질이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지위가 그 재능에 합당하면 종신토록 바꾸지 않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저자 박현모는 서울대에서 정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왕과 재상, 선비의 리더십을 연구ㆍ강의하고 있다. '정치가 정조',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정조 사후 63년' 등의 저서가 있다. '세종처럼'과 '세종이라면'을 구분하면 전자는 당대의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 분석하고 있고, 후자는 현대사회에 적용할 때 참고할 점에 대해 고찰했다. 각권 2만원,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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