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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3월 23일] 나폴레옹과 드골

권태균(조달청장)

한국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프랑스인은 나폴레옹이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 가보면 나폴레옹의 유적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나마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왜 그럴까. 본능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수없이 많은 부하들의 희생하에 스스로 종신통령을 거쳐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나폴레옹이 그다지 위대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한 후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를 가서 위암 비슷한 지병으로 죽는 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워털루 전투에서 세인트헬레나섬까지의 과정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파리로 복귀한 그는 왕당파에 의한 체포나 암살을 걱정하며 서둘러 막 탄생한 친불 국가인 미국으로 망명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수평선을 막고 있는 영국해군에 길이 막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영국 망명을 위해 스스로 영국함정에 올라 투항을 한다. 그러나 그의 부활을 두려워한 비정한 영국정부에 의해 대서양의 고도 유배로 방침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치고는 마지막 모습이 그리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많은 프랑스인이 존경하는 드골 대통령은 어떻게 마지막을 장식했을까. 프랑스에 산지 무려 1년쯤 지나서야 불현듯 드골 대통령의 묘소에 가보고 싶어 수소문해서 겨우 알아냈는데 그 스토리가 감동스럽다. 아주 조그만 시골마을에 안장돼 있었는데 마을의 이름은 ‘콜롱베’. 왜 앵발리드나 판테온 같은 위인 묘지가 아닌 시골의 동네묘지에 묻힌 것일까. 전해들은 스토리는 이렇다. 그에게는 안느라는 장애인 딸이 하나 있었다. 그가 해방전선의 선봉에 서서 정신없이 일할 때라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고 결국 그 딸이 죽었다. 시골의 한 보잘것없는 묘지에 묻을 수밖에 없었고 드골은 그 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먼 훗날 죽음을 앞둔 드골 대통령은 자기를 그 딸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고 그 유언대로 보잘것없는 시골 공동묘지의 딸 옆에 안장됐다. 역시 거인은 죽음도 거인답다. 사회적 리더들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도 프랑스 말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사회적 리더인 정치인과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평상시에는 덜 무겁게 느껴지던 이 귀중한 사명과 책임이 경제위기를 맞아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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