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A씨는 전세자금 5,000만원을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영업정지 사태를 맞았다. 10일부터 지급되는 가지급을 받더라도 2,000만원 한도에 묶여 나머지 3,000만원을 시중은행에서 대출 받아야 할 형편이다. 이처럼 금융기관이 영업정지를 당하면 해당 금융회사 고객은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를 받게 되지만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자유롭게 자금을 뺄 수 없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실 금융기관 정리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객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미국이나 영국처럼 부실금융이 정상적인 영업을 지속하면서 정리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해 보지 않으면 답답함 모른다"=대형 저축은행이 잇달아 영업정지를 당하자 일부 고객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5,000만원 미만의 예금자들은 원금을 보장받지만 예금 전액을 회수하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불편과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일과 4일 주요 저축은행에 뱅크런(대형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5,000만원 미만 예금자들이 대거 몰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한 저축은행 고객은 "지난해 저축은행 퇴출 당시 수개월 동안 예금이 묶여 고생했다"면서 "이자 손실은 아깝지만 지난해 고생 때문에 예금을 인출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당해 보지 않으면 그 답답함을 모른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정리절차 중에도 영업=그렇다면 선진국들의 금융기관 정리절차는 어떨까. 나라별로 다르지만 영업정지 조치를 내린 후 정리절차를 진행하면서 일상적인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 예금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정리절차가 개시된 금융기관에 대해 시정조치내용을 공개하면서도 금융기관의 영업을 정지시키지 않고 있다. 때문에 뱅크런에 대한 우려는 없다.
영국도 파산은행에 대해 7일 이내에 계약이전 또는 예금대지급을 통해 예금자들이 자신의 예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부실은행으로 지정되더라도 예금보호 한도 안에서의 예금인출을 포함한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영국의 특별정리제도와 일본의 금융재생법 등 부실금융기관 정리관련법은 부실금융기관 정리 원칙으로서 각각 은행 서비스의 지속 및 금융기관의 금융중개기능 유지를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부실 금융기관 정리절차 과정에서도 영업을 지속하도록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 당국 "중장기적으로 검토해볼 만"=하지만 우리나라는 고객 불편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제도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 국내 부실금융정리 절차가 미국이나 영국과는 다른데다 법률적 환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고객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부실 금융기관 정리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하지만 법률을 손질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단기간에 제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이제라도 장기간 영업정지를 수반하는 정리절차가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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