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각] '수능 망국(?)론'


'영어지문 해석을 통째로 외워라.' '빈출 수학문제 유형을 암기하라.'

다음달 13일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심심찮게 등장하는 권고 문구다. 뜨거운 교육열로 비행기조차 잠시 뜨고 내리는 것을 멈추게 하는 시험이라지만 수능의 운영과 관리, 적용 양태를 들여다보면 국가시험의 '격'도, 존재의 의의도 갸웃거리게 된다.

'수능과 EBS 교재의 연계율 70%' 방침에 따라 현재 고3 교실에서는 EBS 문제집을 교과서처럼 사용한다. 이 '일개' 문제집은 국가시험에서조차 통째로 베끼어내는 수준으로 '격상'되며 지문의 번역을 외우고 영어시험을 치르는 기현상을 만들고 있다. 수학에서도 '평이한 응용'을 넘어 숫자만 바꾸거나 때로는 그마저도 생략한 문제가 등장한다. 한데 EBS 문제집은 저작권 협의조차 거치지 않은 영어지문들을 무단 발췌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할 수 있음이 지난 국감 결과 드러났다. 출판업의 상식조차 잊은 안하무인 앞에서도 신용섭 EBS 사장은 "정부 출연금 감소로 인터넷 강의를 정상 운영할 수 없다"며 읍소하기에 바빴다.

현재 전국 고교 중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단 1개교. 하지만 올해 수능 제2외국어 영역에서 베트남어는 전체 제2외국어 응시자의 34.82%가 선택하는 1위 과목이 됐다. 시험이 쉽고 등급 따기가 적당해 '수능 로또'로 급부상한 탓이다. 그런가 하면 영어 영역은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을 획득할 수 있는 '물 수능'이 예고된다. 올해 서울대가 인문계 정시모집의 영어 반영비율을 수학보다 5%포인트 낮은 25%로 설정했을 정도다.



이처럼 국가시험이 '변별력'을 포기하게 되면서 내신성적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모집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대학들도 우수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수시와 정시 비중을 7대3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수시전형은 학교 성적과 교내 활동을 종합평가하기에 내신이 좋지 않아도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길도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한해 약 8,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31개의 외국어고와 25개 과학고는 '변별력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게 됐다. 입시 간소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연세대와 고려대는 2014∼2016학년도 입시전형에서 특목고 학생의 흡수통로인 특기자 전형을 되레 강화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에 입학한 일반 고등학교 비중은 사상 최초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자율형사립고 폐지 반대시위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기타 비용이 상당한) 외고ㆍ과학고는 붙어도 걱정, 안 붙어도 걱정"이라며 "(고교 입학이 대학을 결정하게 된 마당에) 자사고는 좋은 교육환경을 물려주고자 하는 중산층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되뇌기도 했다.

대학입학을 위한 국가시험은 우수한 인재가 양성·배출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모아 진행돼야 한다. 또 사회 계층화가 진행될수록 국가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시소계(隨時小計)'로는 국가 백년지대계는커녕 미래를 잃어버린 차세대만 양산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