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의 볼모지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김연아는 대한민국에 존재만으로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단지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발목부상·고관절통증을 이겨내고 결국 세계 정상에 서는 투지와 단 1명의 후배에게라도 기회를 더 주기 위해 은퇴의 유혹을 버리고 다시 지옥 같은 훈련장을 찾은 희생정신을 보며 국민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힘들고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응원밖에 해줄 게 없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감동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김연아는 언제나 '여왕'일 수밖에 없다.
여운이 남기는 한다. 석연치 않은 판정 논란만 없었다면 좀 더 여왕에게 걸맞은 화려한 피날레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판정번복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4년 뒤 평창에서 복수하자'는 비이성적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올림픽 2연패를 바랐던 만큼 실망이 크리라는 걸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조차 1등만, 금메달만 바라는 우리의 이기심일지 모른다. "(실수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는 김연아의 경기 직후 인터뷰 내용은 잠시 잊혔던 스포츠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김연아는 삶에 지친 대한민국에 행복과 희망의 씨앗을 심고 무대를 내려왔다. 그 씨앗을 4년 뒤 평창에서 꽃피우는 것은 체육계와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떠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잊지 못할 감동을 준 피겨여왕에게 이제 박수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아디오스 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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