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쇼핑가 중 하나인 리젠트스트리트에는 휴대폰 세계 최강자인 노키아 매장과 혁신의 대명사 애플 매장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매장 크기는 비슷했지만 내부 풍경은 정반대였다. 애플 매장은 아이폰을 체험하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반면, 길 건너 매장에는 불과 1~2명만이 서성거렸다. 변화에 성공한 기업과 거부한 곳의 극명한 대비였다.
△노키아가 원래부터 통신기업은 아니다. 1865년 설립 당시까지만 해도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삼림을 이용해 펄프를 주로 만들었다. 지금은 본사가 해안평야지대인 에스포에 있지만 당시에는 목재 운송을 위해 강을 끼고 있는 소도시 노키아에 공장을 뒀다. 지금의 사명(社名)이 생겨난 것도, 초창기 로고에 물고기가 그려져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다양한 인수합병을 통해 전자회사로 변신했고 1984년 '모비라 토크맨'으로 휴대폰 시장에 처음 등장했다.
△1998년에는 드디어 모토로라를 제치고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원동력은 혁신이었다. 노키아는 1992년 유럽형 2세대(2G) 이동통신 휴대폰을 처음 개발,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로열티 수입이 늘어나면서 기기 값을 경쟁사보다 싸게 할 수 있었다. 한때 시장점유율 50% 돌파의 괴력 뒤에는 이처럼 혁신의 결과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노키아가 지금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시대 흐름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안방인 핀란드마저 삼성전자에게 내줬다. 모토로라의 재판이다. 돌고 도는 역사의 증언인 셈이다.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의 고위관계자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노키아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시장에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레노버 심지어 삼성전자까지 인수자 후보에 넣고 있다. 2011년까지 14년간 휴대폰을 대표하는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시장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변화를 외면하고 현실 속에 도피한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우리 기업들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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