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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실에 모인 18명의 여자 무용수가 몽환적인 음악에 맞춰 다양한 동작을 펼쳐낸다. 군무와 독무, 정(靜)과 동(動)이 한 데 섞인 움직임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그리고 여럿에서 다시 하나로 변주되며 묘한 그림을 만든다. 독특한 몸짓 속엔 놀랍게도 ‘강강술래’가 녹아 있다. 전통 춤사위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로운 동작과 음악으로 빚어낸 국립무용단의 신작 완월(玩月·달을 즐기다). ‘달의 리듬으로 변주된 춤’이라는 표현만큼이나 실험적인 무대를 지휘중인 장영규(사진) 연출을 만났다.
‘장영규’란 이름 석 자는 사실 음악 감독으로 유명하다. 영화 암살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둑들·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복수는 나의 것 등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선보여 온 그는 완월로 무용 연출에 도전한다.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죠.” 장 연출은 지난해 러시아 소치에서 강강술래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퓨전 국악 그룹 ‘비빙(Be-being)’의 멤버로 올림픽 연계 행사에 초청받은 그는 당시 한국의 대표 춤 하이라이트를 엮어 만든 국립무용단의 ‘코리아 환타지’를 보며 강강술래에 빠졌다. “여러 명의 무용수가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가 다시 분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말 강렬했죠.” 그는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강강술래 공연을 촬영한 뒤 한국에 돌아와 그 위에 여러 음악을 입혔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입히면 정겨운 움직임이 공포 분위기로 바뀌었고, 합창곡을 붙이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광기가 보이기도 했죠. 어떤 음악을 붙이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이미지가 나왔어요.” 무용단에 ‘음악을 바꿔보는 것은 어떤가’라며 건넨 제안은 ‘당신이 해보면 어떤가’라는 역제안으로 돌아왔다. 무용수 18명과 함께 꾸미는, 한복 벗은 새로운 강강술래 ‘완월’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번 작품의 핵심은 ‘분석과 해체’다. 완월은 특별한 스토리 없이 10분짜리 강강술래의 주요 동작을 잘게 쪼개 1시간의 공연으로 변형·조립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강강술래 부속놀이 중 하나인 ‘개구리타령’엔 독특하고 다양한 손동작이 등장하는데, 이 동작을 팀별로 나눠 순서를 바꾸고 변형하는 방식으로 한 무대 위에 펼쳐낸다. 정작 장 연출의 주특기인 음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무용수들도 연습곡에 맞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완월에서 음악은 동작이 완성된 뒤 넣을 ‘마지막 포장’입니다. 우선순위는 동작이죠.” 그는 모든 공력과 시선을 무용수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라이브 연주가 아닌 녹음 음악을 쓰고, 필요하면 일부 장면에 ‘무음(無音)’도 넣을 생각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강강술래)을 쪼개고 늘려 새롭게 만들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요 실험이 될 수 있는 이번 작품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장 연출은 “강강술래라는 이름만 알고 그 매력을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며 “우리 공연을 본 뒤 ‘도대체 강강술래의 원형(原形)이 뭐길래 저러냐’, ‘원형이 궁금하다’고 말하는 관객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웃어 보였다. 서서히 달은 차오르고 있다. 달을 즐기며(玩月) 달을 완성해 나가는(完月) 즐거움은 10월 9~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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