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제한하는 비정규직법이 지난 1일 시행되면서 수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실직 사태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법이 개정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며 정치권을 비난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얽매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를 방치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된 데는 정작 피해를 당하고 있는 당사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실체 파악이 어렵다는 게 큰 이유로 지적된다.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는 사실상 한국노총의 한국비정규직연대회의(한비연)와 민주노총의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전비연) 밖에 없다. 이상원 한비연 의장과 김금철 전비연 의장은 “비정규직법 처리를 둘러싼 최근의 문제는 노동부나 정치권이 얘기하는 기간 조정이나 유예로 풀 게 아니다”라며 “해고금지법 제정과 정규직 전환 지원금의 조기 집행을 통해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한 뒤 장기적으로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 비정규직법이 기본적으로 완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현 비정규직법은 도입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다"며 "기간 제한 중심의 법이다 보니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고되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속출한 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는 일부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장도 “그나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이뤘다는 점은 인정해줄 수 있지만 임금 차별 등 완전한 전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완전한 법이었다”고 평가했다. 법 시행 이후 개별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잇따라 해고되는 데 대해 김 의장은 "정부의 100만 실업 대란설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100인 미만의 중소 사업장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가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구로디지털단지 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2년 계약기간 전에 잘려나간 사람들은 계속 업체만 바꿀 뿐 단지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업체를 계속 돌다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경우까지 있다"고 전했다. 총고용은 변하지 않아도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상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김 의장의 지적이다. 이 의장은 정부의 성의있는 조치부터 요구했다. 그는 “정부가 100만명 실업을 얘기했으면 그에 맞게 실업 대책도 강구해야 되는데 기존 대책 외에 내놓은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동부가 주장하는 사용기간의 연장이나 정치권이 얘기하는 일시 유예에 대해서는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이 의장은 “정부는 처음에 100만명 실업대란설을 얘기하다가 이후 86만명, 71만명 등으로 계속 바뀌었다”며 “정부가 법 적용 대상자가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기간연장이라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단기 대책으로 해고금지법 제정과 정규직 전환지원금 조기 집행을 제시했다. 김 의장은 "정부나 정치권이 비정규직의 대량실업이 우려된다면 당장 해고 금지법이라도 만들어 해고를 막고 사용사유 제한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 도움이 되려면 최소한 3년은 지원이 돼야 한다”며 “지원금을 대폭 상향하고 우선 집행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규직 전환 지원금에 대해 김 의장은 "돈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해고를 막으려면 수조원의 돈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