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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를 아낀 이황… 차나무로 설움 달랜 정약용 …

■ 선비가 사랑한 나무

강판권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는 '인(仁)'을 설명하면서 "널리 배우고 뜻을 두텁게 하고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인의 성리학을 실천하는 개념으로 '가까이에서 생각한다'는 뜻의 '근사(近思)'가 등장한다. 남송시대의 주자(朱子)와 여조겸(呂祖謙)이 성리학을 집대성하며 편찬한 '근사록'은 중국과 한국 성리학자들의 필독서였다. 선비들이 이렇게 터득한 '근사'를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 중 하나로 나무가 있다. 성리학의 전성기인 중국 송대에 매화,소나무,대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고, 명대에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로 평가한 것 역시 나무를 통해 성리학을 실천하려는 태도였다.

나무 인문학자로 통하는 저자는 "나무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 즉 천명(天命)대로 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나무처럼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이치이고 이것이 곧 우주의 원리"라며 '나무를 통한 근사'라는 자신만의 성리학 연구 방법론을 제안한다. 이에 기반한 책은 조선의 대표적인 선비들이 나무를 통해 수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퇴계 이황은 임종의 순간에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매화를 아꼈다. 퇴계는 특정 매실나무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기도 했고, 귀향길에 미처 데려오지 못한 매화분을 배편으로 따로 전해 받을 정도였으며, 매화와 대화하고 시(詩)를 주고받아 '매화시첩'도 엮었다. 저자는 이 같은 퇴계의 자세에서 "격물(格物)은 만나는 물 자체에 대해 절실한 마음으로 다가가,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단계에서 완성된다"는 깨우침을 얻는다.



우암 송시열의 변치 않는 신념은 주목을 닮았다. 주목 나무는 껍질과 심재와 열매가 똑같이 붉다. 그런가 하면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든 독창적인 문체로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한 반항적 선비 이옥은 유독 사랑했던 자귀나무를 살피며 근심을 잊었다. 정약용은 차 나무 잎으로 만든 차 한 잔과 함께 귀양살이의 설움을 달래며 수신(修身)을 실천했다.

성삼문이 사랑한 배롱나무의 꽃 백일홍에서 충(忠)을 해석하고, 추사 김정희의 글에 쓰인 '백(栢)' 자를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로 번역해야 한다는 지적 등 저자의 독특한 접근법이 눈길을 끈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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