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지난 3일 장 마감 뒤 공시를 통해 "김승연 회장 등 3인이 한화S&C 주식의 저가 매각을 통한 업무상 배임혐의로 공소됐다"고 밝힌 게 발단이 됐다. 거래소는 20여분 뒤 한화를 지연공시에 따른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했다. 또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6일부터 매매 정지 조치를 취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절차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거래소는 이번 사안에 대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했다. 5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어 정오께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6일 정상 거래된다고 밝혔다. 회사의 영속성과 재무구조의 안전성에 대한 적격성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거래 정지기간을 최소화하고 상장폐지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건 당연히 옳다. 하지만 공시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제도가 과연 형평성 있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중소기업과의 차별적인 태도가 특히 눈에 띈다. 보해양조는 경영진의 횡령 관련 공시를 제출한 뒤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57일 동안 거래가 정지됐었다. 마니커 역시 횡령과 배임혐의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라 18일 동안 주식을 사고팔 수 없었다. 거래소로서는 시가 총액이 2조8,934억원에 달하는 한화를 장기간 거래 정지시킨다는 점이 부담스러웠겠지만 규정은 모든 기업에 동등하게 적용하는 게 옳을 것이다. 코스닥 기업의 매매 정지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가 '이중잣대'를 주장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래소의 태만도 이번 사태를 키웠다. 한화가 공소장을 확인한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지난해 9월 1차 공판이 진행되는 등 사안이 구체적으로 드러났지만 거래소는 조회공시를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의 구형이 떨어진 뒤 한화는 부랴부랴 공시를 제출했고 거래소는 뒤늦게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하며 대응했다.
요즈음 법원의 판결을 문제 삼은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거래소의 이번 조치도 불공정 시비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거래소가 규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집행과정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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