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가 촉망되는 신흥시장으로 각광받던 인도네시아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타격을 제대로 받고 있다.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외환보유액도 빠르게 줄어드는 등 달러화 유동성 부족에 따른 금융불안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와 중앙은행은 세계은행(WB)과 일본 등에 긴급융자를 요청하는 등 달러화 확보에 혈안이 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인도네시아 재무부가 세계은행과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 55억달러의 긴급융자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달 말 시장 불안을 이유로 50억달러의 자금을 요청했지만 통화방어를 위한 시장개입에도 루피아화 약세와 시장불안이 지속되자 융자규모를 5억달러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요청한 금액 가운데 20억달러는 WB가 지원방침을 정했으며 나머지 35억달러에 대해서는 JBICㆍADB 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중앙은행인 뱅크인도네시아(BI)는 이 밖에도 최근 20억달러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한 데 이어 시중은행들을 대상으로 달러화표시 예금을 발행하는 등 통화방어를 위한 달러화 확보에 여념이 없다. 신문은 BI가 시중은행에서 달러화를 흡수하려 단기 달러화표시 정기예금을 신설, 7일물과 14일물 입찰을 실시해 7억달러가 낙찰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통화방어 수단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지난해 6월 1달러당 8,500루피아까지 올랐다가 지난 1년 사이 10%가량 가치가 급락, 지난달 29일에는 달러당 9,570루피아까지 하락하며 2009년 12월 이래 2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최근 루피아화 환율의 3개월 전망치를 달러당 9,200루피아에서 9,750루피아로 올려 잡았다. 앞으로도 루피아 가치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대신 외환보유액을 갉아먹으며 시장에 달러화를 푼 탓에 5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1,115억달러로 한달 전에 비해 50억달러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소재 OCBC의 군디 카야디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인"이라며 "핵심 요인은 달러화 유동성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한때 몰려드는 글로벌 투자자금 때문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인도네시아가 달러화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은 유로존 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리스크 자산을 팔고 미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경상수지가 악화하면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인도네시아 경상수지는 지난해 4ㆍ4분기부터 올 1ㆍ4분기까지 2분기 연속 적자에 빠졌으며 원자재 가격 하락과 글로벌 수요 둔화로 무역수지는 지난해 263억달러 흑자에서 올해 50억달러 수준으로 흑자폭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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