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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기업들은 슈퍼 엔고시대가 장기화되면서 공격적인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는 그동안 해외 M&A에 소극적이던 일본 산업계의 풍토와 다르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등 경쟁국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M&A 자문회사 레코후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이후 9월 말까지 일본 기업들이 M&A에 투입한 자금은 모두 3조엔(45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배나 급증했다. 해외 기업들의 M&A 건수도 236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30%나 늘었다. 특히 일본 산업계에 M&A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들도 해외에서 본격적인 기업사냥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제약업체 다케다는 1조1,100억엔을 쏟아부어 스위스 제약회사 나이코메드를 인수했으며 일본 내수시장에만 머물렀던 주택설비업체 주생활그룹은 이탈리아 건축자재업체 페르마스틸리사를 630억엔에 사들였다. 제지업체 왕자제지는 신흥시장의 판로를 뚫겠다며 남미 지역까지 진출해 브라질의 휘브리아세를로스를 240억엔에 인수했다. 중소기업 주택자재업체인 아이카공업은 인도 업체 봄베이부르마트레이딩을 인수해 현지 멜라민 합판시장에 진출했다. 일본 기업들이 이처럼 해외 M&A에 사활을 거는 것은 엔고로 자금부담이 크게 줄어든데다 경기침체 및 급격한 노령화 현상으로 내수시장마저 얼어붙어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엔고 현상이 지속될 경우 일본 기업들의 M&A 열풍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M&A 실탄도 두둑한 편이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은 흑자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부차입이 아예 필요 없는 알토란 같은 기업도 전체 상장사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일본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및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세계 각국의 증시가 급락하는 바람에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가격도 크게 낮아졌다"며 "일본 기업들 입장에서는 훨씬 적은 자금으로 매력적인 업체를 인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 금융권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국내 기업들의 M&A 지원자금을 적극 대출해주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요 은행은 본점에 M&A 전문 부서를 잇따라 설치해 공격적으로 대출을 집행하고 있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일본 기업들이 주요 은행의 대출을 받아 성사된 M&A 규모만도 1조4,000억엔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엔고 현상 및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해 M&A 기금까지 만들어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도 기업들의 해외진출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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