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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강한 성장 원치않는 월가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시대 경험으로 강한경제에 인플레이션 걱정 가중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 후보 내부 논쟁 줄이는데 큰 역할 할 것

우리도 학계·내부인물 위주 벗어나 중앙은행 총재 인력풀 넓혀야

조영 앤트롭J인베스트먼트 그룹 대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처음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사했을 때가 지난해 5월이다. 기준금리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끝나도 상당기간 제로(zero)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채권 금리는 급등했고 주식은 급락했다.

월가의 시장 참여자들은 오래 기다리던 경제 성장이 드디어 속도를 낼 것으로 해석했고 기준금리를 제로 상태로 유지한다는 발언은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버냉키의 발언은 실물 경제 주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월가의 투자자들한테는 큰 불안거리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싸울 때 주식은 무너진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시대의 경험을 아직도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월가는 강한 경제 성장보다는 완만하고 느린 성장을 환영한다. 강한 경제 성장은 연준 안팎에서 인플레이션 걱정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버냉키 발언으로 야기된 모기지 금리 상승은 강한 회복세로 돌아선 주택경기를 짧은 기간 내에 냉각시켜버렸다. 지난해 봄 이후 미국 경제는 재고 축적량을 조정하면 실질적으로 약 2.5%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20% 이상 상승했다.

경기 침체가 끝나는 데 약 5년이 걸렸지만 고용률·국내총생산(GDP)·근로소득 등의 회복은 상당히 느리고 미비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정체됐는데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통신 문명의 발전에 지구 전체가 서로 경계가 없어지고 하나로 연결돼가며 라이프스타일은 짧은 기간에 극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잠잠한 수면 위와는 달리 밑으로는 상당히 넓고 큰 변화가 진행됐다.



통화정책을 보더라도 버냉키 전 의장에서 재닛 옐런 의장으로 바통이 넘어간 것을 단지 스타일의 변화로 여긴다면 너무 피상적인 생각이다. 우선 버냉키는 경제지표가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테이퍼링을 시작해놓고 임기를 마쳤다. 버냉키가 선호하던 투명성이라는 명목하의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는 더 이상 학문적 이슈가 아니고 나오는 경제지표마다 축소냐 완화냐 항시 토론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설사 경제지표가 좋지 않아 테이퍼링을 중지하려 해도 연준 내부의 분열이 커질 수 있어 현재 속도대로 테이퍼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지금의 약한 지표들이 기후 요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서 채권 이자율이 더 상승하고 주식시장에 활기가 떨어지면 연준 내에서 큰 의견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의미 있는 경제 성장을 이루려면 장기 이자율이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매파 연준 위원들이 통화 축소를 정당화하고 있어 장기 이자율이 낮아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희망적인 점은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 후보가 이러한 내부 논쟁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피셔의 학문적 전문성과 글로벌 금융계 경험은 다른 연준 위원들에 비해 출중하다. 특히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장기간 역임한 그는 유로존 경제에 많이 연결된 이스라엘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에도 침체에 빠지지 않게 잘 막고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면에서 상원 인준 후 피셔 부의장의 발언이나 인터뷰 등은 연준 방향뿐만 아니라 향후 경제와 자본시장 전망을 판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큰 전환기를 겪는 세계 금융 및 경제 체제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학계나 내부 인물 위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로벌 금융기관의 생리를 알고 금융과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인물을 미리 찾아내서 금융통화위원회 등 통화정책의 경험을 쌓게 해 차차기 중앙은행 총재 후보 풀을 깊고 폭넓게 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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