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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일본 도쿄 남동쪽의 중소 제조업체 집적단지인 오타(大田)공업지구에는 아침부터 활기가 느껴졌다. 주택가에 점점이 들어선 소규모 공장들에서는 희미하게 기계 돌리는 소리와 직원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지진과 원전 폭발의 공포로 일본 전체가 뒤덮인 와중에도 상대적으로 지진 피해가 적었던 이곳은 마치 지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다. 오타공업지구 역시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제한송전에 따른 전력난을 비껴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고 공장 가동시간을 조절하는 등 각 중소기업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류가 비교적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도 이곳에 입주한 부품소재 업체들에는 큰 힘이 됐다. 물론 아직 불안 요인은 가시지 않고 있다. 자동차 부품 및 공작기계 주변장치 등을 생산하는 가쓰라가와제작소(桂川精螺製作所) 관계자는 “전기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18일이면 정상조업도 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전력사정이 악화될 경우 공장 가동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지진 후 1주일이 지난 지금 가쓰라가와제작소처럼 일본 산업을 저변에서 떠받치는 부품소재 ‘강소기업’들은 불안감 속에서도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지진의 영향으로 조업을 일시 중단했던 기업들 중에도 생산을 재개하는 곳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대지진의 피해가 적은 도쿄나 이바라키(茨城)ㆍ군마(群馬)ㆍ사이타마(埼玉)현 등의 일부 기업들은 어렵사리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인 산덴도 이날부터 군마 공장에서 조업을 재개했다. 지진으로 건물 일부에 입은 손상은 복구를 마쳤다. 다만 자재공급과 전력공급은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라 당분간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산덴 측은 “통상 수준에 비해 가동률은 낮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자동차ㆍ철강 등 주요 수출 기업들의 조업 중단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조달처가 대지진 피해지역에 몰려 있는 등 부품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도요타는 일본 내 12개 완성차 공장의 조업중단을 22일까지로 연장했다. 14일부터 공장 가동을 멈춘 도요타는 당초 16일 가동을 재개할 방침이었지만 부품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조업중단 기간을 연장했다. 회사 측은 조업중단 여파로 10만대의 생산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차량의 수리용 부품공장은 이날부터 조업을 재개했다. 닛산차도 주요 5개 공장의 조업중단을 20일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닛산 측은 “아직 부품업체의 피해상황을 파악하는 단계여서 생산체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스즈키도 국내 6개 공장을 21일까지 멈추기로 했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장을 역임하는 시가 도시유키(志賀俊之) 닛산차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중단이 장기화될지 여부에 대해 “회사는 물론 납품업체들의 피해, 운송을 위한 연료확보와 전력 문제 등이 겹쳐 있어 현 시점에서는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면 (기업)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정부 측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전자 업체들은 점차 생산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후지쓰의 경우 제한송전 때문에 조업을 중단했던 도치기(栃木)현 나스(那須)공장에서 지난 16일부터 제한송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밤 시간을 활용해 생산을 재개했으며 소니도 16일부터 도치기현 전자재료공장에서 생산을 재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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