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를 망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퍼줄 수도 없고...”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국채 모기지 기관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부실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장 논리로만 따진다면 망해도 벌써 망했어야 하지만 국책 기관의 파산은 미국 국가 부도나 마찬가지여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두 기관은 2008년 가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부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 위기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미 재무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 간신히 파산을 면했다. 현재 정부가 최대주주로 돼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이전에도 두 기관의 채권은 재무부가 사실상 지급보증을 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인 미 재무부채권(TB)와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오마바 행정부의 고민은 주택시장 침체로 두 기관의 부실행진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두 기관은 적자를 볼 때마다 정부에 손을 벌여 ‘세금 먹는 하마’로 통한다. 이른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전형인 셈이다. 두 기관은 서브프라임 부실사태가 폭발한 지난 2007년 여름 이후 10분기 이상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누적 적자 규모는 각각 1,500억 달러 안에 이른다.
프레디맥은 9일(현지시간) 2ㆍ4분기 적자 확대로 인해 정부에 18억 달러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앞서 지난해에도 적자 누적으로 정부에 손을 벌린 바 있다. 찰스 핼드먼 프레디맥 최고경영자(CEO)는 “실업률이 치솟는 등 주택시장에 드리운 암운이 걷히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을 호소했다.
만약 오바마 행정부가 추가 지원을 결정한다면 프레디맥이 지원받은 금액의 규모는 무려 631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이에 앞서 지난주 패니매는 2ㆍ4분기에 31억3,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후 정부에 15억 달러를 추가 요청한 바 있다. 패니매는 지금까지 861억 달러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프레디맥은 이날 실적 발표를 통해 2ㆍ4분기에 순 손실 6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순 손실 8억4,000만 달러보다 적자폭이 7배 이상 늘어난 수준. 물론 정부 배당금 13억 달러가 포함돼 적자가 급증한 것이지만 주택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추가 적자는 불가피할 것으로 월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각각 2,170억 달러와 1,180억 달러의 무수익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며 “상황은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 주택시장에서는 더블 딥(이중침체)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주택가격이 추가 하락하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부실로 이어지고 이는 두 기관의 적자로 연결된다. 브라이언 해리스 무디스 부사장은 “막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프레디맥의 지원 호소에 재무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즉각 밝히진 않았다. ‘퍼주기식’ 지원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눈치를 의식한 탓이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은 선거이슈로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마불사’근절을 다짐하면서 월가 개혁 법안을 관철시켰지만 두 국책기관은 이런 원칙의 사각지대에서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게 공화당의 주장이다.
월가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추가 지원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파산하기엔 너무나 중요한(too important to fail) 기관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이 파산하면 당장 주택금융시장은 사실상 마비된다. 게다가 재무부의 지급보증을 믿고 두 기관의 채권에 투자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국채까지 투매하는 극단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미 행정부로선 주택시장이 안정돼 두 기관의 부실이 해소될 때까지 싫든 좋든 구명 줄을 내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내년 1월까지 두 기관의 민영화를 포함한 주택금융 개혁방안을 내놓겠다는 일정을 밝힌 바 있지만 주택시장이 회복되지 않는 한 두 기관의 처리 방향을 쉽게 가닥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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