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사회복지와 노동조합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영국병'에 시달려야 했던 1970년대의 영국. 여기다 석유 가격이 단숨에 4배까지 치솟은 1973년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영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급기야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까지 신청했다.
당시 런던과 맨체스터 등 주요 도시의 거리를 가득 메운 실업 청년들은 자신들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는 기존 사회질서와 시스템을 혐오하기 시작했고, 기민한 문화 기획가 맬컴 매클레런은 이 청년들의 삐딱한 정서를 파고들 수 있는 펑크록 그룹을 구상했다. 이것이 바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시작이다. 'Anarchy in the UK(영국의 무정부주의)'을 통해 파괴와 분노를 외치고, 'God Save the Queen(신이여, 여왕 폐하를 구하소서)'을 빌려 특권계급을 향한 조롱을 퍼붓는 섹스 피스톨즈와 그들의 노래는 당시 체제 박탈감에 고통받고 있던 청년 세대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전설이 되었다.
음악은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나 노랫말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한 이른바 '메가 히트' 곡들이 단순히 음악적 예술성 하나만으로 우뚝 서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지 않을까. 시대성을 반영해 동시대 대중의 정서를 깊이 파고들 수 있을 때야 비로소 대중 전반의 지지를 얻는 메가 히트 넘버가 탄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팝 칼럼니스트이자 대중음악 평론가로 유명한 임진모씨가 새 책 '팝, 경제를 노래하다'를 통해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처럼 시대성과 대중성이 만나 탄생한 팝의 명곡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시대성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개의 큰 축이 있겠지만, 저자가 이번에 집중한 것은 경제적 사회다.
저자 스스로는 '어설픈 수준의 대중음악 경제사에의 도전'이라고도, '여러 색조의 정서를 반영해 형성된 대중음악에서 경제만을 부각한다는 것이 그 음악에 대한 온전한 해석에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고도 말하지만, 시대의 명곡들을 경제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시도는 흥미로우면서도 설득력이 높다.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어딘가에)'에 대공황기 희망을 꿈꾸는 대중의 열망이 깃들어있다고 보고, 라디오헤드의 'creep'이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던 1990년대 하류층 청년들의 불안과 시대 분노를 담아냈다는 해석 등이 그 예다. 노랫말을 일일이 한글로 번역한 것은 물론 곡마다 QR코드를 첨부해 책을 읽으며 노래를 들어볼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띄는 장점이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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