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열린 채용'에 나서고 있다. 채용과정에서 학력·학점·어학점수를 보지 않음으로써 취업시장의 약자로 여겨지던 젊은이들이게 희망사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렇지만 지난주 말 삼성그룹 입사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현장을 취재하고 나니 걱정도 남는다.
삼성의 SSAT는 이른바 스펙을 반영하지 않고 모두에게 시험기회를 주는 대표적인 열린 채용제도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이 시험에 올인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삼성은 지난 1월 서류전형과 총장추천제를 도입해 합격자들에게만 SSAT 응시자격을 주려고 했지만 대학 서열화 등 뜻하지 않는 논란을 만나 2주 만에 뜻을 접었다.
그래서 결국 이달 13일 전국 85개 시험장에서 치러진 SSAT에는 또다시 10만여명의 수험생이 운집했다. 하반기까지 감안하면 20만명, 국내 대학 졸업자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숫자다.
시험 당일 서울 강남의 한 SSAT 시험장에서 만난 한 남녀 커플에게 "SSAT와 서류전형 중 어느 전형이 더 공정한 것 같냐"고 물었다. 둘의 대답은 달랐다. 남성은 "스펙을 보지 않고 오직 시험성적으로 승부하는 SSAT가 객관적"이라고 말했고 여성은 "SSAT라는 시험은 지원자가 살아온 궤적과 노력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류전형이 공정하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화려한 스펙을 갖추기 위한 과정도 힘들지만 고스펙을 만들어도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구직자를 불안하게 한다"고.
그렇지만 스펙을 보지 않는 열린 채용도 문제는 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당락이 결정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열린 채용을 불신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이들 대부분이 결국 더 화려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애쓰게 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수험생은 "일부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열정과 끼를 보겠다고 하는데 무슨 끼를 어떻게 보겠다는 건지,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토로했다. 그는 "스펙에 올인하는 사회 분위기는 분명 문제지만 열린 채용 등의 단순한 대책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끼를 보겠다고 하는 기업에 결국은 스펙 좋은 청년이 합격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열린 채용은 분명 옳은 길이고 시대의 대세다. 그러나 그 기준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다움'을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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