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월가에서 한국인이 성공하려면 실력 못지않게 주류사회와의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글래스실링(Glass Ceilingㆍ비주류에 대한 진입장벽)을 깰 수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1호인 앤디 김(73ㆍ한국명 김경수) 싯김(Sit/Kim)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 고문은 뉴욕 맨해튼 첼시피어에서 열린 제4회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재단(KACF) 연례 만찬행사에 앞서 가진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소수민족인 한국인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국인 사회로 녹아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63년 월가에 진출해 2000년 은퇴한 김 고문은 이날 KACF에서 선정한 올해의 '자랑스런 경영인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으로서는 1967년 CFA(CFAㆍCharted Financial Analyst)를 가장 먼저 취득한 김 고문은 1960년대 이후 미국 금융계 빅뱅의 한가운데 있었던 월가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컬럼비아대와 코넬대 경영대학원(MBA)을 거쳐 당시 메릴린치에 이어 미 2위 증권사인 FI듀폰에서 애널리스트로 월가에 첫발을 내디뎠다. 두 번째 월가 직장인 아이베르스테드(투자은행)에서 수석부회장까지 지냈는데 이 회사는 나중에 영국계 로버트플래밍에 인수된 뒤 다시 체이스은행으로 넘어갔고 체이스는 미국의 2위 은행인 JP모건과 합병됐다. 김 고문은 "월가에서 일하려 한다면 MBA를 거쳐 대형 은행이나 투자은행에 인턴으로 경험을 쌓은 뒤 작은 금융기관이나 신생회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김 고문은 한국의 월가 금융기관 인수와 관련,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일하는 문화 차이로 인재가 빠져나가 빈 껍데기만 넘겨받을 우려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금융위기와 관련해 "1960년대 월가는 헤지펀드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로 당시 월가의 레버리지는 10배 정도에 그쳤다"며 "50~60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킨 탐욕이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레버리지가 30배 정도를 넘으면 자본을 더 확충하도록 규제했어야 하는데 금융 당국은 '미국은 소련과 달라' 라는 식으로 시장을 방관했다"고 꼬집었다. 김 고문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월가의 보너스 문제에 대해 "이익금의 50%를 보수로 책정한다는 것은 월가의 오래된 전통"이라며 "그러나 보너스는 한해의 결과가 아닌 5년을 보고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특별 손님으로 참석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위기를 계기로 MBA 과정에서 윤리와 관련한 커리큘럼을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MBA 과정이 '돈ㆍ시장ㆍ자신'을 의미하는 '3M(MoneyㆍMarketㆍMe)에서 '탁월함ㆍ포용ㆍ윤리'를 강조하는 '3E(ExcellenceㆍEngagementㆍEthic)'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아이비리그 총장인 그는 "교민 1세대들이 고생한 결과 1.5세와 2세들이 자리를 잡게 됐다"며 "젊은 세대들은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가 공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