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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통제권을 가진 국회가 정부의 예산편성 단계에서 삭감된 국세청의 기업 해외비자금 조사예산을 살려냈다. 국세청을 소관 외청으로 둬 국세청의 친정 격인 기획재정부가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갖고 막강한 힘을 과시하면서도 국세청 요구 예산을 깎았다. 그런데도 국민세금을 아끼기 위해 정부의 예산지출에 관한 한 시어머니 격인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세청의 예산 요구를 예산심사 과정에서 받아준 셈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정부가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기업의 해외비자금 수사에 박차를 가해 1조원가량의 탈세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성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2일 “기업 해외탈세가 엄청난 규모로 추정되지만 올해까지 국세청의 관련 예산이 따로 배정되지 않아 해외탈세를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국세청의 해외탈세 정보활동 등을 위해 재정부가 편성한 예산 8억원을 재정건전성 강화와 조세정의 실현 측면에서 여야 합의로 58억원으로 증액해 예결특위로 넘겼다”고 밝혔다. 앞서 국세청은 재정부에 90억원의 기업 해외비자금 조사 및 탈세추징 예산을 요청했으나 재정부는 관련 예산이 올해까지 한 푼도 없었던 점을 감안해 이를 8억원으로 감액해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의 증액방침으로 국세청은 내년에 해외비자금 추적 전담요원 체류비(22억원)와 정보활동을 위한 특정업무비(36억원)를 받아 홍콩, 싱가포르, 미국 LA, 상하이 등과 주요기업의 진출지역 및 한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정예요원을 파견하고 현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방침이다. 또한 현지 유급정보원을 활용하고 관련업체를 통해 비자금 관련 계좌정보 구입도 병행할 방침이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지난 10월 기업의 해외탈세와 관련, “1조원 이상 추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세청은 기업 해외투자나 해외 투자법인과의 특수거래 과정에서 대주주나 가족들의 비자금이 조성되는 현황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비자금 조사와 탈세에 대한 세금징수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자칫 기업의 해외활동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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