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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5월 21일] 선진국형 기업윤리가 경쟁력

김주남(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최근 소위 ‘박연차 게이트’를 보면서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권이 바뀐 뒤의 먼지떨이식 수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도덕성을 강조했던 참여정부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경쟁·지속성장 위해 필요
우리 사회는 윤리 하면 철학 교과서 속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특히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영리 추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선진국 기업들은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해서는 기업 윤리가 수익성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필자가 30여년간 KOTRA에 근무하면서 해외 주재 시절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선진국 비즈니스 사회의 몇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지난해까지 미국 뉴욕 미주본부장을 역임한 필자는 워싱턴 시내 백악관 주변의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주변 식당을 이용할 기회가 많았다. 이곳은 워낙 로비가 많은 곳이라 황금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인터컨티넨탈호텔 1층 로비에는 수많은 정ㆍ관계, 재계 인사들이 만남을 갖기 위해 북적거린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지칭해서 ‘로비스트’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하고 영수증을 받아 보면 식대와 주류대가 따로 계산된다. 공용 카드로 계산하면 술값은 정산대상이 안돼서다. 워싱턴의 공직자는 35달러 이상의 향응을 받지 못한다. 술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제도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부터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 카터 이후로 워싱턴에서는 폭탄주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 한번은 필자가 일본 대사와 뉴욕에서 골프를 칠 때 우연히 만난 미쓰이 상사 지사장이 일본 대사를 알아보지 못해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당시 고이즈미 정부는 공직자가 기업인으로부터 골프 접대 등 불필요한 만남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일본 내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전성기 시절에 비해 20분의1에 불과할 정도로 폭락했던 데는 이렇게 공직자와 기업인 간 골프 금지도 크게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도 일본 엔화가 힘을 발휘하고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며 불황 이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 일본이 꾸준히 공공 부문에 대한 윤리적 개혁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선진국은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수장도 공사구분이 철저하다. 과거 스위스의 취리히무역관장으로 있을 때 필자는 현지 주재 우리 대사와 함께 네슬레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공장 견학이 끝나고 만찬 장소로 이동할 때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네슬레 회장이 주차장으로 걸어가더니 조그만 폭스바겐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나오면서 옆자리에 타라는 것이 아닌가. 연유를 물었더니 공식 근무 시간이 끝나 회사에서 비용을 대는 회장 차는 타지 않는다고 해 놀란 적이 있다. 사실 미국에 근무하던 시절 기업 윤리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혹한 처벌에 놀라곤 했다. 최근 구제금융을 받은 일부 금융사의 모럴해저드가 도마 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엔론이나 월드콤 같은 대기업의 횡령 사건에 연루된 임원이나 공직자ㆍ국회의원 등의 비리 사건에 대해 검찰 구형이 20년을 넘는 등 일벌백계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뇌물·향응등 발 못붙이게 해야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 부패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40위에 머물러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뒤처져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가 이미지와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선진국들의 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반부패협정을 철저히 지킬 것과 회원국 기업의 높은 윤리적 수준을 의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비즈니스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과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도덕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국가나 기업이 선진사회에서 발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근 ‘박연차 게이트’를 계기로 우리 비즈니스 문화의 치부 중 하나인 뇌물 제공, 골프 접대, 향응 관행을 글로벌 시대에 맞게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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