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어느 여름날. 당시 34세의 유현오(41ㆍ사진) 제닉 대표는 이륙 준비 중인 보스턴행 비행기에 앉아 지나온 일들을 곱씹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벼랑 끝에 몰린 그가 마지막으로 해외시장이나 개척해보자며 나선 보스턴행이었기에 절박함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불과 2년 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무작정 뛰어든 사업이었지만 연구개발(R&D)에서부터 판로개척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지인들에게 어렵게 구한 사업밑천은 갈수록 쪼그라들어 그의 통장에는 300만원만 덜렁 남아 있었다. 당장 직원들 월급도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 대표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고등학교 선배를 찾아갔다. 그는 "설날을 앞두고 선물용으로 마스크팩을 몇 개라도 팔아보자는 요량에 사업을 크게 한다는 선배를 무작정 찾아갔다"고 회상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당돌한 유 대표의 얘기를 듣고 성공을 직감하기라도 한 듯 그 선배는 선뜻 4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유 대표의 표현대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유 대표는 선배로부터 투자받은 자금으로 개발작업에 착수해 기존 액상 형식의 제형 대신 피부온도에 녹는 젤타입의 마스크팩 제품인 오늘날의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세계 최초로 탄생시켰다. 일명 '하유미팩'으로 널리 알려진 하이드로겔 마스크패치를 개발해 한달 평균 1,000만장씩 판매하며 '대박 벤처'로 떠오른 제닉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중소기업 대표가 개발한 마스크팩은 국내 대형 유통채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유 대표가 눈을 돌린 것이 해외시장. 그런 유 대표에게 보스턴행은 창업 이후 2년여간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인 동시에 회사의 존폐가 걸린 심판대나 다름없었다. 진심이 통해서일까. 영어 한마디 못하는 유 대표였지만 미국 바이어들에게 제품력을 인정받으며 첫해 40만~50만달러 규모의 시제품을 수출하게 된다. 이후 미국의 월그린 및 타깃 등 대형할인점에 제품이 속속 입점하며 수출액이 1,000만달러에 달하게 됐다.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제닉은 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잇따라 러브콜을 받으며 30여개국에 진출하는 수출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유 대표가 하이드로겔 마스크를 처음 기획하게 된 것은 그의 학창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해외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았던 유 대표가 호주를 여행하던 때의 일이다. 유 대표는 여행경비가 떨어져 '세계의 배꼽'으로 불리는 호주 울루루의 도로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잠시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섭씨 40도가 넘는 뙤약볕에서 작업을 하고 나면 밤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끙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그때 현지인들이 물에 적셔 냉장고에 넣어둔 수건을 얼굴에 덮어줬던 생각이 떠올라 마스크팩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소한 경험도 놓치지 않고 사업기회로 적극 활용한 유 대표의 기민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유 대표에게도 숱한 고비가 있었다. 매년 100% 이상의 매출성장을 기록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중 유 대표가 점차 욕심을 내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게 화근이었다. 그는 제닉을 '종합 화장품 회사'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제품종류를 80여가지로 늘리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를 앞세워 TV와 매체광고를 진행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제닉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2007년에 20억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유 대표는 "30대 중반에 통장잔액이 40억원까지 늘어나다 보니 자만심을 갖게 되더라"며 "화장품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인지 없이 무작정 사업을 확장하며 실패를 맛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팔리지 않아 반품처리된 제품들을 모두 폐기처분한 것은 물론 구조조정으로 인력까지 감원했던 유 대표는 그때부터 '겸손'을 '경영 1원칙'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지금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제닉 본사 곳곳에는 '2006ㆍ2007년 잊지 말자'라는 표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더더욱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항상 스스로를 다독인다"는 그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후 마스크패치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 유 대표는 2008년부터 탤런트 하유미씨를 앞세워 국내 홈쇼핑 시장에 진출했다. 그동안 고가의 수입 마스크패치를 선호하던 국내 여성들 사이에서 제닉 하이드로겔 마스크 제품의 우수성이 입소문을 타며 80억원대이던 매출은 지난해 360억원, 올해는 820억원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도 매출은 1,2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유 대표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문화 경영이다. "스위스의 몽블랑은 매출이나 규모 면에서 대기업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브랜드파워를 갖췄다"며 "히든 챔피언보다는 전세계에 제닉의 감성과 문화를 전파하는 아이콘 기업이 되고 싶다"는 게 유 대표의 포부다. 이에 따라 최근 유 대표는 충남 논산에 위치한 제닉의 생산공장에서 현장직원 230여명을 모아놓고 뮤지컬 공연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 유 대표를 포함해 서울에 있는 임원들이 연미복을 갖춰 입고 서비스했다. 또 '문화를 아는 사람들이 만드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전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악기를 배우도록 지원하고 있다. 색소폰에서부터 바이올린ㆍ클래식기타ㆍ플루트까지 처음 접하는 악기에 버둥대던 직원들이지만 이제는 제법 악기에서 그럴 듯한 소리가 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유 대표는 "마스크패치 단일 품목만으로 8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은 제닉이 전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라며 "이제는 단순히 마스크패치 제조회사라는 타이틀을 넘어 전세계 여성을 위해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회사로 거듭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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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구 ▦2000년 KIST 고분자 하이브리드센터 연구원 ▦2001년 제닉 창립 ▦2010년 한양대 화학공학박사 ▦2010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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