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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가 제안해 국토해양부의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서울~경기~인천을 한시간대 생활권으로 잇는 GTX가 도입되면 수도권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지방 균형발전, 사업성, 안전 문제 등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미 고속 지하철을 도입해 도시정책에 반영 중인 프랑스와 러시아를 방문, GTX 도입 필요성 및 성공 가능성을 점쳐봤다.』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17㎞ 가까이 떨어진 신도시 팡탱(PANTIN) 지역에 사는 알리샤(35)씨는 매일 광역급행전철(RER)을 타고 파리 시내로 출근한다. 서울보다 더 심각한 러시아워를 겪는 파리 중심부까지 차로 출근 할 경우 1시간을 훌쩍 넘을 때도 많지만 RER를 타면 20~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알리샤씨는 “기존 지하철보다 2~3배 빠른 RER는 파리 외곽에 사는 파리시민들 사이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교통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랑(그랜드) 파리’의 꿈을 실현해주는 파리 RER=파리시와 파리 외곽 5개 신도시를 ‘하나의 파리’로 연결하는 RER는 표정속도 49.5㎞, 최고 80㎞ 이상으로 달리는 현존하는 가장 빠른 지하철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지난 1960년대부터 기존 메트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파리 중심부와 교외를 잇는 RER를 도입, 지금까지 총 5개 노선을 건설했다. 프랑스 교통공사의 한 관계자는 “RER는 파리 지하철 14개 노선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역간 거리가 넓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도심과 외곽 신도시를 연결하는 효율적인 교통 수단이다”고 말했다. 최근 RER는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4월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발표한 ‘그랑파리’ 정책 때문이다. ‘그랑파리’는 수도인 파리와 파리 외곽을 본격적으로 통합해 유럽의 경제허브로 도약할 대(大)파리를 만들자는 것으로 RER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RER의 속도, 운행 수를 증가시키고 새로운 노선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수도권도 GTX 도입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경기도가 추진하는 GTX의 도입 배경도 RER와 유사하다. 수도권 교통난을 극복하고 서울과 경기도를 묶어 경쟁력 있는 메가시티로 키우자는 것이다. 현재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구간은 고양 킨텍스~동탄신도시, 의정부~군포 금정, 서울 청량리~인천 송도 등 3개 노선 총길이 145.5㎞다. 서울 중심부에서 약 20~40㎞가 떨어진 경기권 주요 신도시를 연결하는 것으로 파리 중심부에서 30여㎞ 떨어진 신도시 믈랭세나르ㆍ에브리 등을 잇는 RER와 유사점이 크다. GTX가 도입되면 동탄신도시에서 서울 삼성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8분. GTX가 이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철도를 지하 40~50m 밑에 건설해 노선을 직선화하면서 시속 100㎞ 이상으로 운행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지하철의 표정 속도는 30㎞/h에 불과하다. 경기도는 3개 노선을 오는 2011년 동시 착공, 2016년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간자본 60%가 투입되며 이미 현대산업개발 등 10개 건설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사업을 제안한 상태다. ◇수도권 급팽창, 균형발전 좌초될 가능성도=그러나 GTX의 도입은 가뜩이나 인구와 경제 기반이 집중된 수도권을 더 팽창시킨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파리의 경우만 해도 프랑스 전체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5%에 불과하지만 전인구의 6분의1이 집중돼 있으며 해마다 10만~15만명씩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는 GTX가 도입될 경우 경기도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이 20만대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수도권 전체로 몰리는 차량은 이보다 더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04년 고속철도(KTX)가 도입된 후에도 지방 분산 효과보다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더 심화됐다는 것이 교통 학계의 공통적인 지적이기도 하다. ● GTX건설 문제점은 없나
"지하 암반조건 좋아 국내기술로 시공 충분" 지난 1일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승리공원 인근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파르크파베디역에 들어서니 끝을 가늠하기 힘든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났다. 지하 84m 아래 지하철이 다니는 이 역은 모스크바 177개 지하철 역 중에 가장 깊숙한 역으로 에스컬레이터 길이만 총126m에 달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인 목적까지 고려해 설계된 러시아의 지하철은 이처럼 대부분 평균 지하 50m 밑에 깊숙이 들어서 있다. 선로를 직선화함과 동시에 토지 보상비를 줄이기 위해 한계심도(40m) 밑으로 들어서게 될 경기도의 GTX도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모스크바 지하철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땅속 깊숙한 곳에서 지하철이 건설되면 시공상의 문제점과 운영상의 위험성은 없을까. 교통 전문가들은 일단 국내 기술만으로도 GTX를 시공하고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희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우리는 산악이 많고 좌우 축으로 횡압력이 강해 광폭의 터널이 가능하다"며 "경기도 지역은 암반조건이 좋은 편이라 러시아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도 오히려 대심도 건설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문대섭 철도기술연구원 박사도 "한국은 KTX를 만들며 철도차량 제작에 대한 최고기술을 구축했다"며 "기존의 기술로도 지하 깊숙한 곳에서 시속 200㎞를 내는 철도차량을 만드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모스크바 지하철을 타보니 전동차는 오래돼 낙후돼 보였지만 승객들은 땅속 깊은 곳에 지하철이 운행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지난 1930년대 건설된 모스크바 지하철은 지금까지 인명 사고가 한번도 없었을 정도로 안전하게 운행되고 있다. 니콜라이 표도르비치 바부쉬킨 모스크바 메트로 부사장은 "모스크바 지하철은 안전함과 동시에 460개의 환기구를 통해 맑은 공기를 역 안으로 끌어들여 쾌적하다"고 설명했다. 모스크바=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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