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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실 귀동냥만 8년… 겨우 발표한 1집 반응 없고 2집도 망해
더넛츠 '잔소리' 등 작곡가로 빛발했지만 롱런 갈증 못풀어
FT아일랜드 이어 씨엔블루·AOA 데뷔시키며 잇단 대박
드라마 등으로 영토 넓혀… 사회 환원·봉사활동도 활발
남들 가르치는 일이 좋아 중국어 선생을 하고 싶었던 청년은 대학교 초년생 무렵 밴드 음악에 빠지며 인생이 바뀌었다. 스쿨밴드 활동을 하던 중 음악 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가수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이끌려 이른바 '음악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였다.
"그렇다고 대단한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에요. 그때는 지금처럼 '연습생' 같은 게 없었으니깐. 그냥 작곡가 형의 가방을 들고 녹음실을 따라다니며 어떻게 음악 작업을 하는지 눈으로 훔치고 귀동냥하고 그랬죠."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함께 데뷔를 준비했던 가수 조성모는 '투헤븐(To heaven)'이라는 곡으로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됐는데 그는 계속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아니 오히려 인생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학교를 나가지 못했기에 학점 부족으로 제적됐고 무심코 건네는 "너 가수 준비한다더니 앨범은 언제 나오는 거냐"는 말이 듣기 싫어 친인척들과 만남도 피하게 됐으니깐.
기다림 끝에 1집 앨범을 발매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절치부심하며 3년 만에 낸 2집 앨범 역시 한마디로 망했다. 따르지 않는 운과 회사에 대한 원망이 늘었다.
"지금이야 그때의 시련이 지금의 내가 있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다시 하라면 절대 싫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현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밴드 '에프티아일랜드(FTIsland)'와 '씨엔블루(CNBLUE)', 걸그룹 '에이오에이(AOA)' 등을 키워낸 한성호(41·사진) FNC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무너진 가수의 꿈… 그래도 빈손으로 나오긴 싫었다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한 대표는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미 또래들은 자기 자리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잡았는데 나는 수입도 없고… 그런 데서 오는 자괴감이 심했다"며 "무엇이든 좋으니 여기서 뭐 하나는 이루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다짐처럼 작사, 작곡, 보컬 트레이너, 프로듀서 등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했다. 오전9시부터 저녁9시까지 쉬지 않고 보컬 레슨을 하고 그 이후로는 녹음실에 가서 음악 작업을 하며 밤을 꼬박 새우고는 했다. 다행히 열심히 하고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며 작사·작곡 의뢰가 조금씩 많아졌다. 히트곡도 하나둘 늘었다. 지난 2002년 MBC 드라마 로망스의 수록곡 '프로미스(Promise)', 2004년 KBS 드라마 풀하우스 OST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밴드 '더넛츠(The Nuts)'의 2집 수록곡 '잔소리'가 크게 히트할 2006년 무렵에는 작사·작곡가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욕심은 그때 생겼다. 한 대표는 '내가 창작자이자 아티스트로 세계적으로 롱런 하려면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했다.
"저는 가수도 해봤고 작사·작곡도 해서 히트곡도 내보기는 했지만 그 두 개는 답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문득 들었던 생각이 내가 가수를 소개하는 게 그 방법이지 않을까 라는 것이었어요. 또 당시는 R&B가 유행할 때인데 저는 밴드 음악을 해서 그에 대한 갈증이 컸거든요. 옷에 몸을 끼워 맞추는 음악이 아니라 내가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즉 가수의 콘셉트부터 만들어가는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마침 당시 고(故) 박용하씨의 콘서트 프로듀서로 일본 투어를 하고 있었어요. 일본이 또 밴드 음악이 활성화된 나라잖아요. 여러 차례 일본을 오가며 '우리나라라고 밴드 음악이 안 될 게 뭐냐' 라는 확신 같은 것이 생기게 됐죠. 곧장 가족과 상의하고 몇 개월 뒤 회사를 차렸어요"
◇에프티아일랜드로 첫 타석 홈런… 씨엔블루·AOA로 자리잡아=가수로서는 따르지 않던 운이 뒤늦게야 만개했다. 한 대표가 FNC엔터의 전신 FNC뮤직을 설립한 지 6개월여 만에 데뷔시킨 남성 5인조 밴드 에프티아일랜드는 데뷔하자마자 속칭 '대박'을 쳤다. 이후로도 승승장구. 2010년 남성 4인조 밴드 '씨엔블루'가 데뷔해 '외톨이야'라는 곡으로 밴드 신드롬을 일으켰을 정도로 주목받았고 2012년 주니엘과 8인조 걸그룹 AOA를 데뷔시키며 라인업을 강화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씨엔블루를 데뷔시키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던 점. 에프티아일랜드 한 팀으로 신규 투자를 계속하며 사업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프로듀서들이 제작자로 나섰을 때 한 번에 잘되기 어려운데 에프티아일랜드가 너무 잘돼서 의욕이 앞섰던 것 같다"며 "좋은 아티스트를 키워내겠다는 생각에 투자가 과했고 자금 면에서 상당히 힘들어지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된 것 같기도 하단다. 한 대표는 "밴드는 무대에서 나오는 퍼포먼스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결국 무대 경험이 그 퍼포먼스를 좌우한다"며 "씨엔블루는 데뷔 전 일본에서 작은 공연, 큰 공연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하며 무대에 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그 경험이 바탕이 돼 데뷔하자마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AOA도 마찬가지. AOA는 원래 여성 밴드를 콘셉트로 나왔다. 하지만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한 대표는 빠르게 방향을 바꿔 화려한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걸그룹 콘셉트로 수정했다.
"아직 밴드 콘셉트를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생각은 했죠. 대중음악 기획자란 대중보다 항상 반 발 빨라야 하는 거잖아요. 이번에도 반 발 앞서려 노력했는데 대중들에게는 그게 한 발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배우게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사업 다각화에 집중… 언젠가는 사회로 돌려주고파=한 대표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일은 사업의 다각화다. 일례로 현재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후아유-학교2015'는 FNC엔터가 제작하는 드라마다. 배우·방송MC 등의 매니지먼트 분야를 확대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와 음반사업, 배우 매니지먼트와 드라마 제작을 포함해 대중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면 모두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생각으로 현재 사업들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꿈은 사회 환원과 봉사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지금도 회사를 통하거나 개인적으로 다양한 기부·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역량을 다 바쳐 FNC를 일류로 키운 후에는 비정부기구(NGO) 단체를 꾸려 받은 만큼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도 회사를 통해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우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를 도와줄 수 있고 돌려줄 수 있다는 일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싶어요"
사진=권욱기자
●한성호 대표는 |
● FNC엔터테인먼트는 김경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