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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월 28일] 제도권 불신이 만든 '미네르바'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다음 ‘아고라’에 글을 쓴 박모씨를 구속한 사건이 이코노미스트 등 외국 언론에도 보도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박씨를 구속한 게 현명한 처사인지, 그에게 적용된 실정법이 헌법에 합치하는지 등 논란을 빚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미네르바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으니 당분간 우리 사회는 ‘미네르바 증후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네르바라는 익명으로 발표된 글로 경제적 혼란이 가중됐다고 보는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그런 글에 동요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제도권 언론도 역설적으로 미네르바의 실체를 인정했던 셈이다. 정부와 제도권 언론은 익명으로 글을 쓰는 아고라 같은 사이트가 무책임하다고 보지만 대중이 제도권 언론보다 아고라를 더 신뢰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제는 제도권 미디어에 대한 불신도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이다. 제도권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 사이의 한계도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고조돼 있다는 사실은 심상치 않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년’에서 ‘빅 브라더’가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가 올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오웰의 예측은 그다지 들어맞지 않았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정부는 개인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들도 정부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정보가 자유로이 유통되는 사회에서 압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빅 브라더’가 설 자리는 제한되기 마련이다. 이제 대중은 제도권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또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유명한 블로그는 그 영향력이 웬만한 신문 못 지 않다.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 신문, 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 더 나아가 기존 방송과 인터넷 미디어와의 한계도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역량이 이같이 커진 현상을 테네시 대학의 교수이며 개인 블로그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글렌 레이놀즈는 ‘다윗의 군단(Army of Davids)’이라고 불렀다. 인터넷 미디어와 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며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것들이 ‘익명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특유한 현상 때문에 적잖은 부작용 내지 역기능이 있는데 요즘의 ‘미네르바 현상’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아고라 같은 비(非)제도권 미디어의 익명성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의 익명성을 비난하기 전에 그 같은 ‘익명 증후군’이 혹시 ‘기명(記名)의 비겁함’에서 초래된 게 아닌가 하는 점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언론이 자유롭지 못했을 시절 우리 사회의 언론인ㆍ교수 등 기명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추상론과 일반론, 그리고 양시론과 양비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근래 들어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자 이제는 ‘이념의 편 가르기’에 포로가 돼 자기 진영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한다. 대중이 이들을 불신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가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를 제때 예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가 보여줬던 모습은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지난 1997년의 학습효과를 갖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도 “지금 달러를 바꾸면 반드시 손해를 본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 우리 정부였다. 정부가 보다 정직해지지 않고 또 우리 사회의 기명들이 정론을 펴지 못한다면 미네르바 같은 익명 증후군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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