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위안화, 유로화 등 세계 주요 화폐가 입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주요 화폐가 지닌 두려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면, 향후 해당 국가의 각종 경제정책은 물론 갈등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미국의 트라우마로 '대공황'을 꼽았다. 대공황은 아메리칸 드림을 가장 크게 흔들어놓은 사건으로 산업생산량이 반으로 줄고, 남성 인구의 4분의1에 달하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등 문제를 낳았다. 이에 미국 경제는 결국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긴축정책이 미국에 강력한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점. 미국인들은 대공황 당시 국고와 돈줄을 죈 게 경기 후퇴를 가속화시켰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트라우마 때문에 "미국은 향후 명백하게 인플레이션 정책을 펼칠 것이다. 미국에서는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대공황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중국의 트라우마로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교체된 '화폐혼란'을 꼽는다. 존속기간이 채 10년이 되지 않는 것이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폐 혼란상을 보면서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통제가 가능한 화폐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특히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중국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반드시 자국화폐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이에 저자는 중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평가된 위안화를 고수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전세계 기업이 붕괴된다는 1차 목표를 가지고, 궁극에는 위안화를 아시아 지역 준비통화로 확대 하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낼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독일'을 유로화의 트라우마로 정의 내린다. 유로존을 이끄는 독일은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통제를 벗어난 초인플레이션 상태)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통틀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집단 기억 속에 흔적을 남긴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다. 따라서 독일은 경제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도 반드시 긴축재정을 펼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문제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허리띠 졸라매기 정책으로 일관, 유로존 전체의 금융건전화를 꾀하는 독일과는 의중이 다른 프랑스다. 프랑스는 오직 독일 견제만을 목적으로, 독일이 그리스 등 PIIGS 국가들에게 지원금을 많이 지불하는 현 상태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저자는 "유로화는 최선의 선택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보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세계경제까지 엉망으로 만들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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