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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Life] 12년만에 새 앨범 낸 최백호

재즈·집시 다양한 시도… '새로운 최백호' 보여주고 싶었죠


다른 사람에 모두 작곡 맡기고 노래에만 집중

여러 장르 작업하기 힘들었지만 앨범 완성도 만족

의외로 20~30대도 반응 좋아 음반 판매 꾸준

다음 앨범 벌써 편곡 작업… 내년 1월 콘서트도


"키치(kitch:대중적이고 저속한 것)가 판을 치는 세상에 진지한 시도를 하는 가수도 있구나. 그 것도 뒤늦은 나이에…"가수 최백호(62ㆍ사진)가 12년 만에 새로 냈다는 앨범을 CD플레이어에 걸고 3곡을 미처 듣기도 전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다섯번째 트랙의 '목련'이 끝날 때쯤 옆에 있던 집사람이 한 마디 거들었다. "저 나이 들도록 여전한 분이 왜 활동을 안 하지?"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오래된 가수의 복귀에 대한 반응은 짧막한 기사들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의 변신을 먼저 알아 본 건 팬들이었다. 음반 발매 직후부터 '다시 길위에서'는 온라인 교보문고 가요부문 일간 상위권에 오르며 그의 귀환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돌아온 익숙한 가수 최백호를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나 새롭게 변신한 뒷얘기를 들어봤다.

-앨범을 들어보니 12년 만에 다른 가수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어떤 계기로 이 같은 변신을 시도하게 됐습니까?

"사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기회였고, 저로선 행운이었습니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기타리스트 박주원씨가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친구 기타를 너무 잘 치는거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전화가 왔더라고. 기타 연주 음반을 내는데 피처링(다른 가수의 앨범작업을 도와주는 것)을 해달라고. '방랑자'라는 노래였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녹음 해놓고 나니 멋지더라고. 내심 '이런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박주원씨 소속사인 JNH의 이주엽대표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와서 기분 좋게 시작한 거지요."

그를 만나기 전 JNH에서 보내 준 자료를 읽었다. 최백호는 새음반에서 팝재즈, 누에보탱고, 라틴, 집시스윙, 로맨틱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늦바람이랄까. 아니면 젊은 패기일까.

-새로운 시도가 생경하지는 않았습니까.

"거의 모든 곡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작곡해서 하나하나 다른 장르라고 보면 돼요. 재즈가수 말로가 두 곡을 썼는데 모두 난해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말로 특유의 어법이 있거든. '다시 길위에서'는 김종익씨가 작곡을 했는데 말로와는 색깔이 또 달랐어요. 이해인이 작곡한 것은 여성적이었고…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는 재미도 있었지요."

JK김동욱은 최백호의 새 음반을 듣고 트위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글을 남겼다. 의외로 그를 잘 모르는 20~30대의 반응도 뜨거웠다. 당사자인 최백호에게 원인을 물었더니 "전혀 모르겠다. 젊은 작곡가들이 노래를 만들었지만 나이든 가수의 노래니까 내 또래 팬들이 듣지 않을까 생각 했는데 예상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함께 작업한 후배들 중에 재즈를 전문으로 하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했습니다. 당신도 싱어송라이터였는데 다른 사람이 작업한 노래에 적응이 잘 됐습니까.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죠. '왜 이렇게 해야 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하다 보니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들 나이만 어릴 뿐이지 정말 배울게 많은 사람들이에요.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었는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을 했지. 수록곡 '목련'은 녹음을 해놓고 나중에 다시 했어요. 말로가 작곡을 했는데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처음에는 말로 주장대로 했다가 나중에 내 생각대로 바꾸었어요. 후배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긴장했는데 그게 좋았어요." 그의 이 말 한 마디에 학창시절 한 학생의 질문에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교수님이 떠올랐다. 그 교수님의 실력과 성실함은 모든 학생들이 다 인정하는 터였다. 그 같은 태도는 아마도 꿀릴 것 없는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의 발로 일 것이다.



-말로나 전제덕, 박주원 등은 이 바닥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들입니다. 앨범의 완성도에는 만족하십니까.

"만족합니다. 다시 한번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에요. 다소 불만스런 점도 있지만 다시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가수라면 다 가지는 욕심이에요. 그런 경험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지요. 예전에는 겨우 작곡자 한 명, 편곡자 한 명 하고 작업을 했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과 같이 해 본건 처음이에요. 정말 공부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이주엽JNH대표와 작업을 한 것도 행운이에요. 말로ㆍ전제덕ㆍ박주원은 소속사인 JNH와 계약서가 없더라고. 요즘 젊은 애들은 소속사 마음에 안 들면 나가버리는데 오랜 세월 함께 하는 걸 보니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그 양반 몫이 적은 것 같아서 행사 수익 좀 나누자고 해도 안 가져 가더라고…"

-오래 전에 TV에서 "가요 판에 가수는 떠나고 댄서들만 판을 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어떤 생각이 듭니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필요하겠지요. 그게 한국인의 음악적 재능을 말해 주는 거예요. 싸이나 아이돌 개인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한국인들의 재능이라고 봐요. 홍대 앞을 보세요. 연주 잘 하는 애들 정말 많아요. 열악한 환경이 문제지. 연주 한 번에 몇 만원 받아서 생활이 되겠습니까. 음악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싸이가 한번 했으니까 다양성이 확보되겠지. 이번에 낸 내 앨범도 그런 면에서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음악도 있다는 걸 후배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작사는 거의 이주엽 대표에게 맡기셨더군요. 싱어송라이터 출신인데 노랫말을 직접 쓰고 싶지는 않으셨습니까.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보고 싶었어요. 이주엽대표의 노랫말은 아름다워요. '길위에서' 2절을 부를 때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분이 길위에서의 하이라이트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거야. 아까 노래 부를 때도 곱씹고 왔어요. 이번에 공부 잘 했으니 다음에는 내가 한번쯤 곡을 쓰고 싶어요."

-음반 판매는 괜찮습니까.

"입소문이 계속 퍼지고 있어요. 덥석 음반을 집거나 하는 건 아닌데 음반순위도 꾸준해요.

한대수 형이 뛰어 뮤직비디오 한번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고. 대수형이 싸이 보고 뮤직비디오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나봐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 해주시죠.

"1월에 콘서트 잡아 놓았어요. 다음 앨범도 박주원씨가 함께 작업하자고 해서 편곡을 맡겼어요."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 앉았다. 전등에 의지하던 실내를 빠져 나와 차의 시동을 거니 최백호의 CD가 돌면서 타이틀의 첫곡인 '뛰어'가 흘러나왔다. 다시 뛰기 시작한 장년의 사내는 과연 어디까지 내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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